문화산책

눈앞에서 명멸하는 304개의 ‘생명’

irene777 2014. 12. 1. 04:16



눈앞에서 명멸하는 304개의 ‘생명’


김윤경숙 신작 전 ‘하얀 비명’


- 한겨레신문  2014년 11월 27일 -





▲ 도판 성곡미술관 제공



딸깍~딸깍~. 통로를 들어가면 차가운 기계음이 계속 울려온다. 통로 양옆 빨간 비닐막 너머에서 나오는 소리다. 막을 들춰보면 소리 맞춰 깜빡거리는 백열전구들이 매달려 있다. 전구 304개가 엉켜 빚어낸 회오리 모양의 덩어리들이 유난히 빛난다. 그것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 밑에서 올라오는 공기방울이다. 차례차례 켜졌다 꺼졌다하며 위로 피어오르는 회오리 빛의 행렬들. 작가 김윤경숙(44)씨는 그 깜빡거리는 빛과 소리들이 “수면 아래서 울려퍼지는 아이들 비명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떠올리며 만든 작품

바다서 올라오는 공기방울 표상 

한국사회 쌓인 먹먹한 감정 그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만든 김씨의 신작 전 ‘하얀 비명’은 흐느끼지 않는다. 전시장은 세월호 침몰 뒤 한국 사회에 쌓인 먹먹한 감정과 황막한 분위기를 표상한다. 핏빛 테이프로 덮힌 냉랭한 공간들. 붉은 실 등으로 화폭에 기워 빚어낸 촛불 시위 현장의 사람들과 ‘아프다’는 글자들. 메마르고 강퍅한 이미지들이지만, 화폭과 설치작품의 세부에는 섬세한 감정의 결들이 흘러간다. 작품들을 두루 뒤덮은 핏빛은 작가가 유년시절 목격했던 교통사고 참상의 기억에서 풀려나왔다. 그 때 봤던 선연한 핏빛에 지금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투영해 다기한 의미의 ‘구조들’을 만들어냈다. 몸에서 터져나온 체액은, 세월호의 아이들이 가라앉은 바다의 빛깔이면서, 이 시대 한국인의 얼굴을 불안스럽게 뒤덮은 퇴행의 그늘이 된다. 작가는 ‘유신, 유령’이라고 쓰여진 한국인의 얼굴에 덮은 실땀꾸러미와 벌건 화폭에 들어찬 배드민턴 셔틀콕들, 1전시실 양끝을 가로질러 붙인 붉은 테이프들의 ‘바다’로 핏빛에 대한 감수성을 분출한다.


20여년 홀로 칩거해온 김 작가는 테이프에 붉은선 긋고, 화폭을 붉은 실로 한땀한땀 기우는 일관된 작업형식 속에 시대를 성찰하고 쟁여넣는 고행을 거듭해왔다. 2013 내일의 작가상 수상 기념전인 이 전시는 시지프스 같은 김씨의 삶을 담고있기도 하다. 내년1월11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2관. 1관에서는 강화도에서 20여년 작업해온 참여작가 박진화씨의 인물군상전 ‘강화發(발) 분단의 몸’을 30일까지 볼 수 있다. (02)737-7650.



-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