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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선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한 청와대

irene777 2014. 12. 7. 00:24



비선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한 청와대

[이완기 칼럼] 불량한 정부, 불행한 국민


- 미디어오늘  2014년 12월 6일 -




불행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국민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저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하릴없이 기다릴 뿐이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정윤회씨 문건 파문을 놓고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핵심을 잘못 짚었다. 권력의 핵인 청와대에 비선을 만들어놓고 정부 요직의 인사를 좌지우지하게 했던 가장 큰 책임은 누구도 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비선들의 권력암투에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문체부의 노 국장과 진 과장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꾸짖으며 경질하라고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경질되었던 노 국장과 진 과장은 바로 정윤회씨 딸의 승마국가대표 특혜 발탁에 대해 승마협회 감사를 추진했던 당사자들이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비리 의혹들은 문건 파문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10여 년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던 정윤회씨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불과 수개월 전에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 동안 비선이 작동해왔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문건의 신빙성이 60% 이상”이라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폭로도 이를 뒷받침 한다. 비선의 몸통은 정윤회씨가 아니라 대통령과 “언니, 동생”하며 지낸다는 정윤회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씨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이는 청와대가 온갖 비선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시사한다.




▲ 조선일보 2014년 12월 5일 A4면 기사

 


이쯤 되면 누가 보아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 앞에 사과하고 해명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를 비선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암투로 돌리고 박 대통령 자신은 쏙 빠진 채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이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진노했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박 대통령은 “이 문서유출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해서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지에 대해서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문서 유출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졌다는 뜻이다. 물론 청와대 문서가 세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문제지만, 나라를 망가뜨리는 심각한 문제의 본질은 문서 유출이 아니라 문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불리한 사건의 방향을 틀어 공격으로 전환하는 박 대통령의 대응방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대선정국에서 박근혜 후보는 댓글 부정선거를 자행한 국정원 여직원을 조사하려 했던 야당에 대해 “여성을 방안에 감금했다”며 사안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세월호 참사 때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언급한 국회의원에 대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겁박했다.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대통령 발언의 불똥은 애먼 네티즌들을 향했다. 충성스런 검찰이 사이버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네티즌들이 인터넷망명 소동을 벌이게된 배경이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의 권력자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만큼 그에 따른 책임 또한 무겁고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해 왔고 그것은 그의 신뢰와 책임에 대한 부정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 


박 대통령의 비선들이 국민의 삶과 아무 관련도 없는 문제로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에 국가운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경제는 곤두박질을 치고, 남북은 초긴장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국가 자원을 거덜 낸 ‘사자방 비리’는 또 어물쩍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국민의 허탈감이 증폭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기억조차 희미해졌고 국민통합은커녕 국민은 이념, 계급, 세대별로 갈기갈기 찢어져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이 관권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도 꼬리자르기로 끝이 난다. 엄동설한에 높은 광고판에 올라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씨엔엠 노동자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고, 5년간 오로지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한은 풀어줄 기약이 없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에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운위했지만, 이후에 벌어진 또 다른 참사만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 1일 서베링해에서 36년 된 노후선박 오룡호가 침몰한 것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 박근혜 대통령

 


대선 전에 언론은 박근혜를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 동안 대통령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그러한 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언론이 조작해낸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문고리 권력들이 대통령을 배경으로 호가호위하며 국가운영을 분탕질치고 있을 때, 대통령은 패션외교를 선보이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이 시추에이션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가장 공적이어야 할 권력의 중심축인 청와대가 한낱 비선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면 누구의 잘못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파문의 본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면 대통령의 자격 요건에 미달되는 것이며,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도덕률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을 뜻한다. 이래저래 불량한 정부를 선택한 국민들만 불행하게 되었다.



- 이완기 민언련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