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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에도 끄떡없다’ 아버지가 물려준 지배구조

irene777 2014. 12. 19. 17:34



‘여론에도 끄떡없다’ 아버지가 물려준 지배구조


- 시사IN  2014년 12월 11일 -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는 ‘어떤 짓을 하든’ 경영권을 박탈당할 우려가 없다. 

대한항공이 소속되어 있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덕분이다. 

조 회장 일가는 인적 분할을 활용해 추가 자금 투입 없이 지배력을 크게 확장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딸이자 부사장인 ‘헤더 조(Heather Cho:조현아씨의 영어 이름)’가 고객 서비스 문제로 격노해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승객 게이트로 비행기를 되돌리라고 명령했다. 범죄자(culprit)는 누구였을까? 땅콩(Nuts)!”(미국의 여행 전문지 <트래블펄스(Travelpulse)> 12월8일자)


12월5일 발생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return)’이 해외에서도 화제다. 대한항공 총수의 딸이자 최고경영자가 땅콩 한 봉지 때문에 격노해서 이륙 직전 여객기에서 사무장을 밖으로 내몬 ‘팩트’ 자체가 해외 언론에게는 익살맞고 기괴한 에피소드인 것이다.


심지어 nut(땅콩)의 다른 의미(‘미친’)로 말장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12월9일자)은 “그녀는 좋은 서비스를 미치도록 갈망한다(She’s nuts for good service!, ‘좋은 서비스 때문에 미쳤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9뉴스>는 “대한항공 회장의 딸이 ‘nut rage’(‘땅콩으로 인한 격노’ 혹은 ‘미친 분노’)로 여객기 출항을 억지로 지체시켰다”라고 보도했다.




▲ 2011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마이크 든 이)이 대한항공 시험비행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대한항공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면서 경영권을 공고히 했다. 

지난 2월 둘째 딸 조현민 전무(맨 왼쪽)는 정석기업 대표이사로, 아들 조원태 부사장

(왼쪽 두 번째)은 한진칼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연합뉴스 



쫓겨난 사무장을 비난하면서 조 전 부사장만을 일관되게 변호한 ‘대한항공 사과문’도 풍자의 대상이다. <트래블펄스>는 대한항공의 사과문을 넌지시 비웃으며 인용한다. “대한항공은 서비스에 대한 조 전 부사장의 문제 제기가 ‘완전히 정상적이고 합리적(perfectly normal and reasonable)’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사과문이 해당 사무장을 비난한 문장(“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하게 둘러댔다”)에는 따옴표까지 씌워 인용(“lies and excuses”)했다. 


이러한 서구 언론의 보도 태도에는 거대 기업의 경영권마저 피를 따라 흘러내려 가는(그리고 이렇게 획득된 경영권이 타인에게 사적이고 감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데 활용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웃는 시선이 깔려 있다. 회사 법인이 총수의 딸을 무조건적으로 비호한 것 역시 ‘자본주의 기업의 행태’라기보다 ‘특정 혈족에 대한 동아시아적 충성’으로 비쳤을 법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항공산업은 국내에서는 독점이지만 국제적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다. 고객이나 동업자로부터의 ‘평판(reputa-tion)’이 주요 경쟁력이다. 대한항공은 주식회사이므로 경영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평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의 행태나 ‘땅콩 회항’에 대한 대한항공의 대응에는 외부 평판을 의식하는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대한항공은 당초 조 전 부사장의 보직 사퇴만 받아들였을 뿐 부사장 지위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 같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시’는 기괴한 자신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는 ‘어떤 짓을 하든’ 경영권을 박탈당할 우려가 없다. 대한항공이 소속되어 있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인적 분할’로 그룹 지배력 대폭 강화


대한항공은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삼성그룹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한진그룹엔 대한항공이 있다. 다른 재벌그룹들과 마찬가지로 한진그룹 역시 2세인 조양호 현 회장으로부터 3세(조원태 부사장,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로의 승계 문제 때문에 고민해왔다. 그룹을 자식들에게 쪼개 상속하려다 보면 특정 기업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 세금도 내야 하는 등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이런 와중에 계열사들을 그룹으로 묶던 ‘끈’이 느슨해지거나 끊어질 수 있다. 일가의 지배권 중 일부나 최악의 경우에는 전체를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다.


2013년 중순까지 한진그룹의 계열사들은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대충 2층으로 짜여 있었다(위의 그림 참조). 위층엔 정석기업(부동산 매매 및 관리 업체), ㈜한진(물류업체), 대한항공이 있다. 이 기업들은 세 마리 뱀처럼 상대방의 꼬리를 물며 원형을 이루어 조양호 일가(조 회장+조현아·조원태·조현민 3남매) 이외 세력의 침입을 차단하고 있다. 아래층엔 대한항공의 지배를 받는 한진해운, 한진에너지, 한국공항 등 다른 계열사가 배치되어 있다. 정석기업에 결집된 조양호 일가의 지배력이 지분 소유 사슬을 타고 대한항공에 응고된 뒤 아래층의 계열사들로 흘러내려 가는 구조다.


조양호 일가 지배력의 원천은 정석기업이다. 일가가 정석기업에 가진 지분이 37.3% (2013년 상반기)였다. 특수관계자(조 회장의 친지 및 한진 계열사) 지분까지 합치면 정석기업은 사실상 조양호 일가의 개인 기업이다. 이런 정석기업이 한진을 19.41%의 지분으로 지배하고, 한진은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9.69%)다. 대한항공은 다시 정석기업 주식의 48.28%를 소유한다.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다.


그러나 이 견고해 보이는 위층의 지배 사슬에는 약한 고리가 있었다. 정석기업을 제외한 한진과 대한항공에 대한 조양호 일가의 개인 지분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상반기 당시 조양호 일가의 한진 지분은 7.0%, 대한항공 지분은 9.8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은 다른 재벌 그룹사들과 마찬가지로 수년 내에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했다. ‘정석기업의 한진 지분’ ‘한진의 대한항공 지분’ ‘대한항공의 정석기업 지분’ 중 한 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골치 아픈 일이다. 정석기업의 한진 지분을 팔면, 한진에 대한 조양호 일가의 지분은 7.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조양호 일가의 한진 지배가 어려워지면, 한진이 지배하는 대한항공의 경영권 역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릴 수 있다. 한진의 대한항공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 조양호 일가가 겨우 9.86%의 지분으로 대한항공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일가 지배력의 원천이고 반석인 정석기업의 지분을 대한항공이 포기하는 것도 곤란하다.


더욱이 일가 중에서도 조양호 회장이 절대적으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만에 하나 ‘유고’가 발생하는 경우, 조 회장의 지분이 고스란히 3세에게 상속되어야 일가의 경영권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3세들은 물려받는 주식에 대해 5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위층이 흔들리면 아래층의 계열사들도 뿔뿔이 흩어져버릴 수 있다. 일가의 위기감이 상당했을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있었다. 이른바 ‘인적 분할’이다. 실제로 조양호 일가는 지난해 8월 이후 ‘인적 분할’을 통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인적 분할은, 하나의 기업을 두 개의 기업으로 나누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주로 ‘지배하는 기업(지주회사)’과 ‘지배받으며 사업하는 회사(사업회사)’로 쪼갠다. 원래 회사의 자산 중 증권 등 금융자산은 지주회사에, 설비와 대다수의 인력은 사업회사로 배분된다. 인적 분할의 특징은, 기존 주주들이 원래 기업에 가졌던 지분을 두 개로 나눈 기업에 대해서도 각각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당신이 A라는 기업의 지배 주주로 20%의 지분을 가졌다고 치자. 이런 A사가 지주회사인 B사와 사업회사인 C사로 분할되는 경우, 당신은 B사와 C사에 대해서도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단, A기업은 주식 총수의 10%를 자사주(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 회사의 주식)로 보유했다고 가정한다. ‘자사주 10%’란, A사가 A사 자신을 10% 가졌다는 뜻이다. 인적 분할 이후에는 지주회사인 B사가 C사 지분을 10% 보유하는 것으로 변형된다.


이 같은 인적 분할의 원리를 활용하면 추가자금 투입 없이 지배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 꽤 복잡한 과정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당신이 가진 C사의 주식을 B사에 넘기고 그 대가로 B사의 지분을 받으면 된다. 예컨대 C사의 지분 20%를 B사에 건네는 대신 B사 주식 20%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주식 교환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당신은 B사에 이미 보유한 지분 20%에 새로 받은 20%(C사 주식과 바꾼)를 추가로 확보해서 모두 40%의 지분으로 B사를 지배할 수 있다. 한편 B사는 원래 가졌던 C사 지분 10%(A사의 자사주로부터 나온)에 당신으로부터 C사 지분 20%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이로써 B사는 30%의 지분율로 C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은 C사 주식을 한 장도 갖고 있지 않다(모두 B사에 넘겼으니까). 그러나 B사의 지배 주주로서 C사(B사의 지배를 받는)의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조양호 일가가 대한항공을 ‘인적 분할’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한진칼(지주회사)과 대한항공(이름은 예전과 같지만 지금은 한진칼의 지배를 받는 사업회사)으로 쪼갰다. ‘원래 대한항공’의 자사주 비율이 6.76%였다. 그러므로 인적 분할과 함께 한진칼은 자동적으로 ‘사업회사 대한항공’의 지분 6.76%를 보유했다. 한편 ‘원래 대한항공’의 주주였던 조양호 일가는 종전과 같은 지분을 한진칼과 ‘사업회사 대한항공’에 모두 가지게 되었다. 지난 2월에는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부사장)로 선임했다. 딸인 조현민 전무에게는 정석기업의 대표이사직을 맡겼다. 일가 지배력의 근원인 정석기업과 향후 그룹 개편의 핵심인 한진칼에 자녀들을 포진시킨 것이다.


준비가 마무리된 이후인 지난 10월15일부터 11월5일까지 20여 일 동안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주식 교환’을 결행했다. 조양호 일가는 ‘사업회사 대한항공’의 주식을 한진칼에 건네고, 그 대가로 한진칼의 주식을 받았다. 이로써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대주주로 등극했고, 이런 한진칼을 조양호 일가는 확고하게 지배하게 되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주총’과 ‘여론’에도 끄떡없는 지배구조


조양호 일가는 한진칼에 대한 지분율을 23.13%로 늘렸다. 다른 친지나 계열사들(특수관계인)의 한진칼 주식까지 합치면 조양호 측이 확보한 한진칼 지분율은 31.69%에 이른다. 이와 동시에 한진칼의 ‘사업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율은 종전의 6.76%에서 32.83%로 확대되었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치면 조양호 측의 ‘사업회사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율은 47.08%에 이른다. 47.08%는 과반수에 약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경영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총에 참여하는 주주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된다. 이쯤 되면 조양호 일가는 적어도 대한항공 경영권 싸움에서는 천하무적이다. 다른 누구도 일가의 대한항공 지배권을 탐낼 엄두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조양호 회장은 12월12일 조 전 부사장을 계열사 등기이사와 대표 등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눈치 볼 필요 없는 막강한 조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어떤 상상할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땅콩 회항’의 여파가 잠잠해질 내년 3월에는 마침 대한항공 주총이 예정되어 있다. 



- 시사IN  이종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