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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와 세월호 사이 21년...한국엔 무슨 일이?

irene777 2015. 1. 5. 15:10



서해훼리호와 세월호 사이 21년...한국엔 무슨 일이?


-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2일 -



지주형 경남대 교수, <경제와사회>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논문 게재

두 참사, 침몰 원인·사망자 규모는 비슷하나 선장·선원·해경 대처가 달라

“한국 사회 무책임·무능한 쪽으로 퇴보”… 

‘효율적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환상에 불과




▲ 지난 4월16일 대기 중인 승객을 뒤로하고 사고 해역에 출동한 해경구조선으로 

 탈출하는 세월호 승무원들.  침몰한 세월호와  회항한 대한항공 KE086편은 

 무너진 리더십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와 달리 세월호 참사에서 유독 국가의 무능과 정치적 책임 회피에 따른 유가족과 시민의 예외적인 정치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지난 21년 사이 한국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퇴보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일 지주형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비판사회학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경제와사회> 2014년 겨울호에 게재한 논문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에서 이렇게 밝혔다. 논문은 서해훼리호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 대조한 뒤 서해훼리호 참사와 달리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통해 다져진 발전된 산업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났다”며 “대신 그 자리에서 마주친 것은 국가와 자본의 무능과 무책임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현실이었고, 이로부터 세월호 참사의 예외적 정치화가 시작됐다”고 서술했다.


논문을 보면, 서해훼리호와 세월호 참사는 침몰 원인과 사망자 규모는 비슷하다. 지 교수는 “정부의 느슨한 관리감독 아래 비용 문제로 상습 과적을 일삼았던 서해훼리호처럼, 세월호와 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도 이윤을 위해 불법을 저질렀고 정부는 마땅히 해야 할 규제와 감시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둘 모두 민간 해운업체의 무리한 선박 운항을 방치하거나 유도한 국가의 책임이 분명히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차이점도 많았다. 우선 선장과 선원의 대처가 달랐다. 결과적으로 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서해훼리호 선장과 달리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제일 먼저 해경 경비정에 올라 탈출했다. 지 교수는 “순식간에 침몰한 서해훼리호와 달리 세월호의 경우에는 적절한 조치만 취했다면 승객들 모두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구조될 수 있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며 “그럼에도 그들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이 무책임의 원인을 이들의 비정규직 신분에서 찾았다. 그는 “이들에게 높은 소속감과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제대로 된 안전 교육과 해양 사고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며 “안내방송을 담당한 승무원은 선박 사고시 탈출 요령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고 말했다.




▲ 서해훼리호 참사 당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해경의 대응도 달랐다. 순식간에 침몰한 서해훼리호와 달리 세월호는 구조 시간이 충분히 있는 상태에서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구조 작업은 소극적이었다. 지 교수는 “목포해경 소속 123정은 승객 출입구인 선미가 아니라 선장과 조타실이 있는 선수 쪽으로 가서 선원을 먼저 구조했다”며 “해경은 승객 절반 이상이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유리창조차 깨지 않고 무책임하고도 무기력하게 대처했다. 사고 첫날 수중 수색시간도 53분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사고 수습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서해훼리호의 경우 사고 발생 이틀째부터 선내에서 시신을 인양하기 시작했고, 사고 발생 9일 만에 희생자 292명 가운데 279구의 시신을 인양했으며 마지막 시신도 사고 발생 23일째 침몰현장에서 32㎞ 떨어진 근해에서 인양했다. 반면 세월호는 선체 진입에 4일이 걸리고 사고 발생 11일째 거둔 시신은 187구에 그쳤다. 지 교수는 “정부의 주장대로 강한 조류 등 구조 환경이 열악한 것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무엇보다 초기부터 구조작업에 부적합한 (민간업체) 언딘이 구조작업을 독점했기 때문”이라며 “실종자 수색 구조 작업에 집중해야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오후 해경은 선박인양 업체인 언딘과의 구난 계약체결을 청해진 해운에 종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신속하게 대통령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징계했던 서해훼리호와 달리 세월호는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징계가 지연되거나 미흡했고, 유병언 일가를 악마화하면서 책임을 전가했다는 점, 언론보도에서도 ‘선장이 도주했다’는 오보 정도가 논란이었던 서해훼리호 때와 달리 ‘전원 구조 오보’와 ‘사상 최대 구조 작전’ 오보 등으로 언론의 신뢰가 땅으로 추락했던 점 등이 차이점으로 꼽혔다.


지 교수는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라며 “1993년과 2014년 사이에 벌어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재의 한국 사회가 그때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더 무책임하고 무능한 쪽으로 퇴보했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세월호 참사로 깨어진 환상과 드러난 현실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한국이 과거와 달리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도약했다는 환상을 깨뜨리고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반문을 일으키게 했다”며 “서해훼리호 참사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고 공화국’이었지만, 세월호 참사가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침몰 그 자체가 아니라 사고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 때문에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이어 “최근 들어 한국을 포함한 선진자본주의 산업경제에서는 전문가와 국가가 상품화, 경쟁, 개방이라는 시장의 논리에 따를수록 사회 시스템은 더욱더 효율적으로 작동한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이 사회를 지배해왔다”며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유연한 노동시장, 규제완화, 민영화란 곧 무책임과 무능일 뿐이라는 구조적 현실이 폭로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유지되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도 깨뜨렸다. 지 교수는 “청와대로 도보 행진하던 세월호 희생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국가로부터 권리를 가진 국민이라기보다 위험한 존재 또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했다”며 “잘못한 것이 없으니 억압받지 않으리라는 환상은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또 “(참사에 대해) 제일 먼저 책임을 진 것은, 책임을 다했고 그래서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던, 자살한 안산 단원고 교감과 직위 해제당한 단원고 교장”이라며 “국가의 책임 회피와 개인에 대한 책임 전가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국가 전략”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중산층 생명의 실제 가치는 극히 낮고, 국가, 기업, 전문가들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무관심, 무책임, 무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노동계급과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의 약자들 삶은 그저 불안정한 우연, 즉 운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드러냈다. 지 교수는 “이것이 세월호 참사가 준 충격의 핵심이었다”며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를 추동한 것은 바로 이러한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논문은 이런 사실을 종합해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관리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다”며 “세월호 참사는 개인의 자유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효율적인 선진 자본주의 국가라는 이상이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은 사실 언제든지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고 버려질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결론지었다.



- 한겨레신문  이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