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2014년, 잊을 수 없는 4월 16일
유경근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아빠·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 미디어오늘 2014년 12월 31일 -
▲ 유경근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아빠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오늘은 2014년 12월 30일, 세월호 참사 이후 259번째 맞는 4월 16일입니다.
지난 260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모든 힘을 다 쏟았는데 여전히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훨씬 더 멀고 험한 길을 반드시 완주해내야만 하기에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지나온 길을 되짚어봐야만 합니다.
5월 8일 밤에는 김시곤 보도국장의 거듭된 막말에 분노한 모든 가족들이 아이들의 영정을 품에 안고 KBS로 갔습니다. KBS에서도 가로막힌 가족들은 또 다시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 밖에 없다 생각하고 청와대로 향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고 결국 다음날 KBS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 앞 가족들에게 찾아와 사과와 인사조치를 약속했습니다.
5월 16일에 드디어 대통령과 면담을 합니다. 대통령의 진심어린 눈물과 포옹으로 가족들은 마음의 위안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실종자 수습과 참사의 진상규명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6월에는 국회에서 세월호 국정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막말과 ‘조류독감’ 비유 그리고 무책임한 국정조사활동이 반복되더니 결국 청문회도 하지 못한 채 파행으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실종자 9명은 현재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의 모습. ⓒ 연합뉴스
이후 가족들은 본격적으로 국민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버스를 타고 전국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고, 15일에는 350만 서명지를 들고 국회로 국민청원행진을 했으며, 단원고 생존학생들은 안산에서 국회까지 1박2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모두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당연한 요구가 담긴 여정이었습니다.
정치권은 추석을 앞두고 서둘러 특별법 제정을 마무리 지으려고 서둘렀습니다. 이에 우리 가족은 여당과 만나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특검을 두는 가족의 안을 무조건 반대만 할 뿐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방안을 전혀 내놓지 않음으로써 이 역시 결렬되고 맙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여한이 없게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겠다던 대통령은 9월 16일에 “특별법에 수사기소권을 두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국회 특별법 협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습니다. 대통령이 5월 19일 눈물의 담화 후 4개월만에 처음 한 세월호 관련 언급이 어이없게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10월 29일, 10명의 실종자 중 295번째 희생자로 예은이 친구 지현이가 돌아왔습니다. 지현이가 돌아온 후 국회의 특별법 협상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1월 7일에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법이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하루빨리 진상조사 활동이 시작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끔찍하기만 했던 2014년을 겨우 하루 남겨둔 오늘, 우리 가족들은 가방에 약봉지를 한가득 챙기고 여전히 전국을 다니며 국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해야 할 책임을 진 정부 대신 동분서주하며 진실을 밝혀줄 증거들을 수집,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뚱아리까지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절대로 쓰러지지 않으려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써 웃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1일은 261번 째 4월 16일이 아니라 진짜 새해 첫날이면 좋겠습니다.
2015년 4월 16일에는 예은이 앞에서, 예은이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눈물 한 방울 흘려보고 싶습니다.
2015년 12월 31일에는…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작은 희망 한 자락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 유경근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
'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제야의 밤’은 정말 저주의 밤이었나 (0) | 2015.01.06 |
---|---|
<칼럼> 박근혜가 계속 웃을 수 있을까? (0) | 2015.01.06 |
국가 믿지 못하는 당신, 무엇을 할 것인가 (0) | 2015.01.06 |
"따뜻하게 입었니? 아빤 아들 옷 입고 왔어" - 2015년 벽두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에서는 (0) | 2015.01.06 |
"바뀐 것이 없어요" - 전주 시민의 세월호 '기억 행진' (0) | 201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