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언로를 탄압하는 권력은 망한다!

irene777 2015. 1. 21. 01:21



언로를 탄압하는 권력은 망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정치체제다!


- 진실의길  2015년 1월 19일 -




민주국가가 독재국가와 다른 점이 많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국가가 시민에게 ‘말하는 자유’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권력)가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지도자가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이 자신의 지도자를 직접 뽑은 시간은 그리 멀지 않다. 우리나라는 겨우 66년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는 그것마저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지 27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한반도 북쪽은 권력을 대물림하는 ‘봉건왕조’와 다름없다. 지도자를 스스로 뽑을 수 있는 한반도 남쪽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봉건왕조 때도 황제가 대물림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고대중국 ‘전설’이지만 요 임금은 아들에게 천하를 물러주지 않았다. 사마천은 <사기본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는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이어 받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정권을 순에게 넘겨주고자 했다. 순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이로움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볼 뿐이지만, 단주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롭게 될 것이다.”(47쪽)

 

아들이기 때문에 자질과 능력이 없는데도 천하를 물러주면 온 나라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을 이롭게 하는 자질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전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지만 ‘당선’된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이 요 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나라를 물러주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권력을 대물림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정치를 시민과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도 민주주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 지난 해 5월 한국방송(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가 

‘길환영 사장 퇴진과 박근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첫 동시파업에

   돌입하면서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한겨레 21>



정치인은 시민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그런데 권력을 잡는 순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는 정치지도자가 많다. 군사독재시대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현재도 이런 이들이 있다. 통탄할 일이다. 나라가 어지러운 이유는 정치인이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지배자’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은나라 조기는 무정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은 백성을 감찰하면서 그들의 도의로써 기준을 삼는데, 내려 준 수명에 길고 짧음에 있어도 하늘이 백성을 요절시키거나 중도에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성이 덕을 따르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을 때는 하늘이 경고를 내려 그 덕으로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를 어찌해야 하나?’ 라고 말합니다. 아! 임금의 직분은 백성을 공경하여 하늘의 뜻을 잇는 것이며, 정해져 내려온 제사에 따라야지 버려야 할 도를 신봉하지 마십시오. ”(99쪽)

 

임금이 할 일은 백성을 공경하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했다. 무정제는 이를 받아들여 정사를 바로 잡았다. 당연히 은나라는 다시 부흥한다. 민주주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시민이 권력을 비판하고, 권리를 주창하면 지도자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헌법정신과 민주주의에 부합하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래야 나라는 발전한다. 선진국은 ‘경제’발전 이전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중 하나는 말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권력이란 본성은 백성의 비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주나라 여왕이 자신을 비방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때 소공이 말한다.

 

“이는 말을 못하게 막은 것 뿐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합니다. 물이 막혔다가가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반드시 많은 것처럼, 백성들 또한 이와 같습니다.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둑을 터서 물길을 이끌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그들을 말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132쪽)

 

물길을 막으면 반드시 엄청난 재해를 안겨준다. 물길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봉건왕조 때도 말하는 자유를 보장하라고 했는데 민주공화국 시민에게 말하는 자유를 빼앗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공은 이어 “무릇 백성들이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나서 입으로 말하는 것이니 성숙한 의견으로 받아들여 실행해야 한다”면서 “백성의 입을 막는다고 해서 며칠이나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충언했다.


하지만 여왕은 듣지 않았다. 나라에는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럼 여왕의 권력은 영원했을까? 아니다. 삼년 만에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모반해 여왕을 쳤다. 우리도 경험했다. 독재자들이 시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하에서 시민들은 말하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시민들 입을 막으면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고, 암살당하고, 절집으로 쫓겨났다. 이들 독재자들이 소공이 여왕에게 충언한 말을 권력을 잡았을 때 읽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시민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진시황이 이를 증명한다. 진시황은 법률과 도량 무게와 수레바퀴를 통일했다. 문자를 통일했다.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오래가지 않았다.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했다. 그 주역 중 하나가 승상 이사다. 그는 “신이 사관에게 명해 진나라 기록이 아니면 모두 태워 버리도록 했다”면서 “제자백가의 저작을 소장하고 있으면 모두 군수와 군위에 보내 마구 태우게 하라”고 한다. 진시황은 이를 허락한다. 언론 통제요, 사상의 통제다. 전한 시기 문학가이며 정론가였던 가생이 추앙했던 말이다.

 

“진나라 시황제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잘못하고도 끝내 변하지 않았다. 이세황제는 그것을 이어받았으므로 이를 고치지 않고 포악하여 화를 가중시켰다. 자영은 외톨이로 가까이 피붙이도 없었으며, 위태롭고 약했으나 보좌하는 신하가 없었다. 세 군주는 미혹되었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깨닫지 못했으니 패망 또한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266쪽)

 

만약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실행하지 않고,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보장했다면, 진나라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 생각을 묻지 않는 지도자는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 잘못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그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아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도자가 하는 말을 어떤 누구도 반박하지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일사분란’,‘국론통일’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으로 문제가 많고, 국론분열은 필연이다. 모든 시민이 같은 생각만 하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전제국가일 뿐이다. 민주주의 반대는 전제주의다. 전제주의는 반드시 망한다.





1980년 우리나라는 ‘부분적 언론자유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 와서 ‘자유국’이 됩니다. 그러다가 20년만에 다시 ‘부분적 자유국’으로 강등되어버렸습니다. 이명박정권 때 강등되는 일이 많습니다. 민주주의가 강등되니 당연히 언론자유도 강등되는 것이지요.

 

한나라 효문제는 넷째였다. 부황 고조가 낳은 아들이 여덟이다. 황제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황제에 오른 이유는 어진 마음과 덕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칭찬해 마지 않았던 성군이었다. 후대 왕들이 문제를 귀감으로 삼기를 바랐던 것이다.


진시황제가 말하는 자유를 빼앗고, 생각하는 자유를 짓눌려 패망으로 갔다면 효문제는 말하는 이들을 등용했다. 그가 황제에 오른지 2년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명하고 선량하며 정직해 직언과 극언을 할 수 있는 자를 등용해 짐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바로 잡고자 하오. 이 일을 계기로 각자 자신의 직책을 정돈하고 요역과 비용을 절약하는 데 힘써 백성들을 이롭게 하시오.”(422쪽)

 

14년 때는 “부덕한 이 몸이 홀로 아름다운 그 복을 누리고 백성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는 내 부덕함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효문제는 겸손하고 덕망 있는 황제였다. 황제라면 백성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효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생각했고, 백성을 위했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 조선 개혁 군주 정조는 ‘민본정치’를 넘어 ‘민국정치’를 했다. 민국정치란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리엄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봉건왕조이든, 민주공화국이든 국가지도자는 ‘백성’,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는 백성에게 쫓겨나고, 민주공화국 지도자는 투표로 심판받는다.


과연 우리나라 국가지도자들은 진나라 진시황과 주나라 여왕이 간 길을 갈까? 아니면 온나라 무정제와 한나라 문제가 긴 길을 갈까? 우리 시대 필요한 지도자는 무정제와 문제 같은 이들이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뽑을 혜안이 가져야 한다.


<사기본기>는 황제라는 전제군주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곳곳에 지도자는 시민을 탄압하고, 언로를 막는 순간 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정권이 언로를 막으려고 한다.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다. 독재로 회귀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참 위험한 일이요 통탄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집권자와 집권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로를 막는 정권은 반드시 심판받는 다는 것을.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정치체제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598&table=byple_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