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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악의 평범성’과 MBC의 권성민 PD 해고

irene777 2015. 1. 23. 06:01



‘악의 평범성’과 MBC의 권성민 PD 해고

MBC의 ‘불공정의 평범성’에 맞선 젊은이, 망나니칼에 베어지다


진실의길  육근성 칼럼 


- 2015년 1월 22일 -




“나는 단지 나치 정권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로 이송한 행위에 대해) 전쟁 규칙과 정부의 지시에 복종했을 뿐이다. 따라서 내 행동은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치 친위대의 유대인 담당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모사드)에 의해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공개 재판을 받던 중 외쳤던 말이다. 제2차 대전 직후 국제 1급 전범으로 수배 중 남미에서 체포된 아이히만은 자신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심판 할 수 있는 건 오직 신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저항과 사유 불능...악의 일상화


재판 내내 유대인 수백만 명을 아우슈비츠 이송했던 실무책임자의 입에서는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자책감을 토로하는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희대의 살인마’로, ‘홀로코스트의 원흉’으로 손가락질 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나는 법적으로 죄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에게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도 관찰되지 않았다고 한다. 체포된 이후 여러 차례 실시됐던 정신감정에서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정상인’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사회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유대인 학살자를 분석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출간했다. 저자는 아이히만의 심리상태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한다. 악은 행위자의 양심이나 도덕성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억압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에 대한 무저항과 이에 대한 사유의 불능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전체적 분위기와 구조적 압박에 의해 악이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행위가 악인지 생각하지도,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고 단정하고 단지 구조화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부른다.




▲ 유대인 학살을 “명령과 법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전범 아이히만



MBC에 만연된 ‘불공정의 평범성’에 맞선 젊은 PD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건 21일 MBC가 해고 통보를 한 권성민 PD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MBC의 부당한 인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올렸다는 게 해고 사유다. MBC는 “(권 PD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취업규칙과 회사의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예능국에서 근무하던 권 PD는 지난해 6월 ‘오늘의 유머’에 ‘엠빙신 PD입니다’라는 글을 게재한다. MBC는 이 글을 문제 삼아 권 PD에게 6개월 정직 이라는 중징계와 함께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좌천시켰다. 제작부서에서 지방의 비제작부서로 밀려난 권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배생활 이야기’라는 웹툰을 올리기 시작했다.


MBC는 징계 뒤에도 반성은커녕 해사 행위를 했다며 발끈했다. ‘유배생활’이라는 표현이 MBC 사장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했나 보다. 권 PD에게 유배와 해고를 안겨준 비운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 직후 ‘오유’에 올린 글에서 비롯됐다.


대체 어떤 글을 올렸기에 중징계를 당하고 ‘유배’까지 된 걸까. 그의 글은 MBC의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사과의 말과 함께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MBC에 쏟아지는 비판은 거셌다. 유가족 폄훼와 정부편향성 때문에 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안광한 사장의 넋두리와 권성민 PD의 양심


오죽했으면 입사 3년 차 신참이 나섰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보도국 소속이 아닌 예능국 PD가 자사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며 국민에게 반성문을 썼을까. 하지만 MBC의 눈엔 무저항과 사유 불능에 빠지지 않고 공정보도를 가로막는 구조적 억압에 맞서 용기 있게 저항한 젊은 PD가 엄청 괘씸하게 보였나 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하라고 요구하고, 그런 보도만 내보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며 구성원 모두에게 ‘악의 평범성’에 젖을 것을 지시했지만 이에 맞서 권 PD는 저항하고 사유했던 것이다. ‘오유’에 올린 그의 글 일부다.


“결국 방문진에 의해 좌우되는 사장 인사의 문제는 정치 역학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은 합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도… 또다시 징계를 내렸습니다… 저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MBC에서는 아주 사소한 반발로도 취재 업무를 빼앗깁니다… 박근혜 정권의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근혜의 국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박근혜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 수치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싸워 비록 대통령이 박근혜라 한들 그 정부에게라도 국민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 권 PD 해고 사유가 된 ‘유배생활’ 웹툰. 비제작부서 좌천을 ‘유배’로 표현해 ‘괘씸죄’에 걸렸다.



진실 외친 젊은이를 망나니 칼로 베어버린 MBC


권 PD가 이런 글을 올릴 무렵 MBC 안광한 사장도 글을 썼다.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에서 안 사장은 MBC의 세월호 보도가 아주 잘 된 것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MBC의 세월호 보도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황당하다.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하는 넋두리다.


“2002년에 있었던 ‘효순 미선양 방송’이 절제를 잃고 선동적으로 증폭되어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비해, 이번 방송은 국민정서와 교감하고 한국사회의 격을 높여야 한다는 교훈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특보방송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제 역할들을 해준 덕분에 우리 뉴스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항도 사유도 없이 박 정권이라는 ‘전체’의 규칙에 매몰 된 MBC 답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이 강요하는‘악의 평범성’에 맞서 양심과 진실을 외친 젊은이를 망나니 칼로 베어 버리다니. ‘악의 평범성’을 거부하고 ‘선의 희귀성’을 따라간 권 PD에게 박수를 보낸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