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45] <기억의 방법>
- 오마이뉴스 2015년 1월 30일 -
세월은 무정하다. 한반도를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참사로부터 어느덧 아홉 달 하고도 보름이나 흘렀으니 말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덮어 무디게 한다지만, 가족 잃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만 같다. 세상에 삼켜지지 않는 울음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이들의 울음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는 참 많은 아까운 것들을 품고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피지 못한 어린 생명들, 그 아까운 가능성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스러져 갔다. 배에 갇힌 생명들을 구할 것이란 기대는 참담하게 무너졌고 이는 안전과 국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이어졌다.
▲ 기억의 방법 책 표지 ⓒ 도모북스
세월호 침몰참사와 같은 재난사태에서 국가의 역할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구조작업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그리고 신뢰회복이 그것이다. 그러나 참사 이후 열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의 현실은 그야말로 암담하기만 하다. 국가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을 단 한 명도 끄집어내지 못했다. 진상규명은 시작부터 삐걱댔으며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역시 요원해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신뢰의 회복은 가당치도 않다.
세월호 침몰참사는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민낯을 공중에 가감없이 드러냈다. 대통령과 주무부처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 나아가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민, 나아가 그 자신의 눈물과 약속마저 쿨하게 외면했다.
정부부처는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고 고위직 공무원들의 한심한 작태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300명을 헤아리는 국회의원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제 일처럼 여긴 의원을 나는 10명도 알지 못한다. 오보와 희석보도, 자극적인 기사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놓은 기성언론들의 활약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건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던 나 스스로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세월호 침몰을 역사책 속 활자화된 사건으로만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세월호가 잊혀지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세월호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글을 쓰고 읽으며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진상조사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은 말한다. 아직 아무것도 이뤄지지 못했는데 벌써 잊으려는가 하고 말이다.
<기억의 방법>은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고통의 기록이다. 고발뉴스 객원 사진기자로 활동하는 이동호 씨가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출판한 것으로 참사 이후의 팽목항과 안산 합동 분향소, 시청 앞 광장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통의 순간들이 그대로 담긴 사진집이다. 책에는 유시민 전 장관, 김용민 PD, 문희정 아나운서(이상 국민 TV), 대한 성공회 김현호 신부, 방송인 김미화,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 변상욱 CBS 대기자등 각계 유명인들의 글도 함께 실렸다. 이들 글과 사진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하나의 의지로 묶여 있으며 책은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위로와 치유, 회복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우리가 지금 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것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다. 용서든 치유든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정한 세월로부터 진실을 지키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만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구에도 '망각은 노예의 길이요, 기억은 구원의 신비'라 적혀 있다지 않던가. 이 책은 세월호를 기록하고 기억하여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겠다는 마땅한 선언이다.
기억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데, 이제는 그를 만질 수 없고 껴안을 수 없다. 그에게 화를 낼 수도, 그가 웃는 것을 볼 수도 없다. 사랑의 감정으로 기억하는 사람과의 예기치 못한 사별(死別)은 단순한 대상의 상실(喪失)이 아니다. 그 감정을 지닌 사람의 자아, 그 일부 또는 전부도 함께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이다. 그 실존(實存)의 붕괴가 만들어낸 공백(空白)을 채울 수 있는 건 눈물뿐이다. (유시민)
우리의 발걸음은 미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미안함을 새기며 걸었습니다. 4.16 이후 너 나 할 것 없이 미안하다고 했던 그 마음이 식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더욱 미안했습니다. 전 국민이 미안했던 마음은 흐릿해지고 그 자리에 의심과 외면, 그리고 분열의 마음이 채워지는 현실을 애도하며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진실을 보지 못하고 부(不)정의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자책감 때문에 더욱 미안했습니다. 우리들의 '미안합니다'는 부 정의한 현실에 물든 일상에 대한 참회의 몸짓이었습니다. (김현호)
세월호 참사를 두고 다양한 사회학적 접근과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한국 사회에 의식이라는 것이 실존하는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길 가다가 낯모르는 아이라도 물에 빠지면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건져내고 보는 것이 사람의 보편적 행태다. 상식이라면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상식의 부(不) 존재였다. (정운현)
-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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