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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편지> 집권 3년차와 ‘양파 총리’, 이게 뭡니까

irene777 2015. 2. 22. 04:24



집권 3년차와 ‘양파 총리’, 이게 뭡니까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5


- 한겨레신문  2015년 2월 17일 -




▲ 곽병찬 대기자



  1년차엔 선거 부정 파문, 2년차엔 세월호 거짓 눈물

갈수록 최악인 인사, 남은 임기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받던 도중 인상을 쓰고 있다.   이정아 기자



하는 일마다 왜 이렇게 고약합니까. 국민을 힘들게 하는 겁니까. 일주일 지나면 집권 3년차가 시작되는데, 앞으로 남은 당신의 임기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완구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하고 인준 투표가 이뤄지기까지 벌어진 난장판을 돌아보십시요. 먼저 정치권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생산적 경쟁의 원칙과 화합의 분위기가 자리잡아 가던 중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여권 전체가 파국으로 내몰릴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준 투표를 밀어붙였습니다. 거부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야당은 고심참담한 처지였습니다. 이래서야 야당이 국정에 생산적으로 협조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이 나라를 망국으로 빠뜨려온 지역감정이란 괴물을 불러냈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중립적이었던 충청 사람들에게 불을 질렀습니다. 눈도 귀도 먼 충청권은 호남을 원망했고, 정부 여당은 이런 분위기를 악용해 호남을 고립시키려 했습니다. 내년이 총선이니 손 안 대고 코 풀려고까지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충청 출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과 정치인들은 중앙당에 조속한 인준을 재촉했겠습니까.


알다시피 이완구씨는 홍성 출신이라지만, 그곳의 김좌진, 한용운, 김복한, 김종진 선생 등 지조 높은 인사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떻게든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려 했고, 땅 투기는 물론 절세·탈세를 귀신같이 해왔고, 심지어 친인척을 동원해 대학교수로 임용돼 월급만 받아 챙기고, 언론을 제 수족처럼 부리려 했습니다. 충절을 브랜드로 삼는 이곳의 우국지사가 본다면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사람을 지명하고, 지역감정을 부채질하여, 통과시킨 당신의 재주입니다. 대통령이라면 모름지기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특정 지역의 대통령이 아니라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역간 분열을 자극해 당파적 목적을 관철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지지율 30%대 대통령이 싸움에서 승률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대통령이 아니라 조폭이나 할 짓입니다.


이완구씨는 지난해 12월 땅속에 묻힌 지 오래인 ‘대통령 각하’를 당신의 면전에서 세 번이나 언급했습니다. ‘대한민국을 힘들게 이끌어오신 대통령 각하께 박수를~’ ‘대통령 각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당시는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자들이 거명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로서는 당신의 심장에 남을 최고의 아부를 날린 셈이고, 당신은 그런 이씨의 모습이 흐뭇했던가 봅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당신의 충성스런 새누리당은 그의 인준을 관철시켰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당신을 흔쾌히 지지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입속의 혀처럼 굴 사람을 수하에 두려는 당신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전두환씨의 이 한마디만큼은 기억해야 합니다. “눈물 많은 놈 믿지 말라.” 재임 시절 동기동창이면서도 그 앞에서 각하, 각하 하며 온갖 비굴을 다 떨던 노태우씨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전씨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노씨는 대통령이 되자 그를 청문회에 세우고, 백담사로 보냈습니다.


눈물 연기에선 이완구씨도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그는 유족들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뒤 그가 한 일은 ‘세월호 특별법’이 유족들의 뜻대로 제정되는 걸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줄 수 없다, 특검 추천권도 줄 수 없다는 그의 의견은 결국 관철됐습니다. 그리고 여당 쪽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으로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왜곡했던 인물들을 선임했습니다.


당신도 눈물 연기를 해봐서 알 겁니다. 눈물 잘 흘리는 탤런트는 상황만 바뀌면 언제든 해죽해죽 웃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든 배반하고 만다는 게 전씨가 제 삶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이 총리 후보자의 인준이 끝났으니 곧 당신의 집권 3년차를 함께할 진용이 꾸려지겠죠. 김기춘 비서실장도 짐을 다 쌌다고 하니, 내각과 청와대의 컨트롤타워가 새롭게 바뀌는 셈입니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문고리 3인방과 상시들은 건재하고, 문지방에 머리 박고 ‘황공무지’만을 읊조릴 총리가 들어섰으니 어찌 내용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비서실과 총리의 충성 경쟁이 오히려 가관일 것 같습니다.


김장수 주중대사 임명은 기대를 일찌감치 접게 한 또다른 이유입니다. 웬만하면 이완구 총리 지명으로 말미암은 난장판에 대해 속죄하는 차원에서 은인자중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중은커녕 당신은 소란을 틈타 김씨를 주중대사에 임명했습니다. 그는 외교의 문외한입니다. 게다가 그는 꼿꼿 장수가 아니라 뺑소니 장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파동 때는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처지이지만, 진실이 왜곡되어 유포되는 걸 침묵으로 방관했습니다. 군사정부 시절 군 장성 출신을 즐겨 전권대사로 임명하던 독재자들의 습관이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인사입니다.


하도 많이 되풀이되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국민들이 놀라 자빠지는 모습을 즐기는 건 아닐까? 중국의 서주를 망하게 한 건 포사와 그의 미색에 빠진 유왕이었습니다. 유왕은 포사가 웃는 걸 보려고 외적의 침략이 없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려 제후들이 군대를 끌고 장안으로 오도록 했습니다. 어이없이 돌아가는 병력을 볼 때마다 포사는 웃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견융이 침략했고, 유왕은 봉화를 올렸지만 아무도 지원병을 끌고 오지 않아, 나라는 망하고 유왕은 참수를 당했습니다.


2년 동안 당신은 총리로 다섯명이나 지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씨 3명은 낙마했습니다. 인준됐다고 하여 적절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부적격의 정도는 뒤로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이번이 최악이었습니다. 병역, 재산 형성, 탈루 탈세, 부동산 투기, 삼청교육대 인권유린, 교수 임용 의혹, 그리고 언론 협박 등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이뤄진 편법 탈법 불법 의혹, 부도덕한 처신과 부적절한 자질은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래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집권 1년차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불복’ 논란으로 대통령선거 부정 문제를 덮고 넘어갔습니다. 2년차엔 거짓 눈물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피했습니다. 그럼 3년차엔? 국민이 피해갈 만큼 지저분한 자들을 앞세워 국민과의 불통을 강화하겠다는 겁니까?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