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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한용 - 선장의 탈출과 대통령의 출국

irene777 2015. 4. 23. 02:45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창>


선장의 탈출과 대통령의 출국


- 한겨레신문  2015년 4월 16일 -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헝가리 정상회담에 앞서 

  야노쉬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과적’으로 출발한 박근혜호, 편중인사로 ‘평형수’ 빼버려

기획사정 ‘급변침’ 사고 불러…‘유체이탈’ 계속땐 족쇄될 것


지금 모두의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 1주기요, 다른 하나는 성완종 리스트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표정이나 발언이 너무 깔끔해서 차갑게 느껴진다. 그는 남미 순방을 위해 예정대로 16일 출국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고 갈까? 아무리 공감 유전자가 부족해도 참사 1주년에 유가족을 외면한다면 그건 너무 야멸차다. 유가족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부정부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유체이탈’ 화법이다. 그래도 될까? 아무래도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 국정은 마비 상태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날아갔다. 여당 의원들과 보수 언론까지 총리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이날 사흘째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대에 서서 곤혹스런 표정으로 의원들과 말싸움을 했다. ‘비타 500’이 ‘비타 3000’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서글픈 상황이다. 대한민국호는 지금 침몰중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고집하고 있다. 데자뷔(기시감)라는 말이 있다. 신뢰를 잃고 비틀거리는 이완구 총리에게 뒷일을 맡기고 나라를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과, 침몰하는 세월호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하던 이준석 선장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인다. 지나친 비유일까?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는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지난해 10월 검찰의 수사 설명 자료는 이렇게 되어 있다.


“선사 측의 무리한 증톤 및 과적으로 인해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상태에서 운항하던 중,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대각도 변침으로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좌측으로 쏠려 복원성을 잃고 침몰한 것이다.”


첫째, 박근혜 정부는 애초 ‘과적’ 상태에서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등 너무 많은 것을 약속했다. 자신에게 그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 자신은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실제로 해결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영남 중심의 편중인사로 ‘평형수’를 빼버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나 진영·유진룡 전 장관처럼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권 안에서 차례차례 제거됐다. 영혼이 없는 관료와 친박 정치인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반대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 정권이 복원력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검찰의 독립성은 검찰총장 중심으로 지휘체계가 확고할 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검찰총장을 제치고 일선 검사장을 직접 통제하려고 했다. 승진을 눈앞에 둔 검사장과 부장검사들은 충성 경쟁을 불사하며 우르르 몰려다녔다. ‘고박’이 풀린 것이다.


넷째,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획 사정이라는 ‘급변침’이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느닷없이 부패척결의 칼을 빼든 것은 찌라시 파문, 이완구 총리 임명 파동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정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메랑을 예언했다. 예언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렇다. 성완종 리스트는 돌발사건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에 내재하고 있던 구조적 문제가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찾아서 덩어리를 들어내야 할’ 것은 과거 정권의 비리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 참모들의 구조적 비리였다. 지금 남의 일처럼 화를 낼 때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성완종 리스트에서도 결코 도망칠 수 없다. 12일 뒤 그가 귀국해도 사태는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유(WHY)를 정확히 알아야 대책(NEXT)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짜 원인이 뭘까? 검찰의 수사 발표는 피의자들을 형사처벌하기 위한 사법절차상 자료에 불과하다. 증톤과 과적을 도대체 왜 막지 못했을까? 조타수는 도대체 왜 급변침을 한 것일까? 선장은 왜 퇴선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않았을까? 도대체 왜 구조를 못한 것일까? 왜? 왜?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사람의 생명보다는 물질을, 안전보다는 비용절감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안전망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해체되어 갔고, 주입식 교육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작성한 백서의 내용이다. 근원적인 부분을 짚고 있지만 구체성은 떨어진다. 지금부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그걸 하나하나 밝혀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협조해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에 박근혜 대통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은 등장한다. 따라서 중심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은 성완종씨의 돈을 왜 받은 것일까? 불법 경선자금이나 대선자금을 도대체 얼마나 받아서 어디에 쓴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 모든 궁금증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성실하게 답변해야 한다. 사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완종 리스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영원한 족쇄로 남을 것이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70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