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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 세월호 1주기 특집>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irene777 2015. 4. 30. 13:41



<세월호 1주기 특집>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 시사IN  2015년 4월 15일 -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누가 어떤 책임을 졌을까.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지고 실형을 받은 사람 중에 고위 공직자는 없었다. 

정치적·도덕적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이들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나는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여했고, 5개월 이상 세월호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했다. 선원 재판이 처음 열린 6월10일 광주법원에는 기자들이 엄청나게 취재 경쟁을 벌였다. 당시의 국민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지면서 국민의 관심도, 법정을 찾는 기자도 줄었다. 재판 내내 단편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사실들을 모아 사고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책임을 따지기란 대다수 국민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되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는 시점에 누가 어떠한 책임을 졌을까?


검찰은 세월호 사고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399명을 입건하고 그 가운데 154명을 구속기소했다. 광주법원에서는 재판 7건이 잇달아 열렸다. 각 재판의 피고인들은 △세월호 갑판부·기관부 선원 등 15인 △청해진해운·화물 하역업체·운항관리자 등 11인 △해경 123정 정장 △진도관제센터(VTS) 센터장·관제사 등 13인 △세월호 구명뗏목 점검업체 임직원 4인 △세월호 증개축 시 점검을 담당한 한국선급 연구원 △민간 구난업체 언딘 특혜 의혹과 연루된 해경 고위 간부 3인 등이다. 그 밖에 목포지원에서는 세월호 증선·인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항만청·해경 공무원 등 8인이 재판을 받았고, 인천지법에서는 유병언 일가의 비리에 관한 재판이 열렸으며, 제주지법에서는 세월호 화물 과적과 관련해 청해진해운·해운조합·항만노조 간부들이 법정에 섰다.




▲ 지난해 11월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연합뉴스



이 중에서 국민들은 선원 재판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재판부는 “가만히 대기하라”라는 선내 방송을 내보낸 채 자신들만 탈출한 갑판부·기관부 선원에게 유기치사상 유죄를 선고했다. 기관장 박기호에게는 다친 동료를 고의로 남겨놓고 나온 것으로 보아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준석에게 36년형이, 박기호에게 30년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선원들에게도 5~20년형이 내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선원들의 승객에 대한 살인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선원들이 승객 퇴선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로 3층 로비의 여객부 직원에게 퇴선 지시를 한 점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2심 재판에서 다시 ‘퇴선 지시의 유무’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청해진해운 임직원, 화물 하역업체 우련통운 간부, 인천항 운항관리실 직원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사건에서는, 사고 원인이 배의 복원성 불량 및 화물 과적인가 아니면 화물의 고박 불량인가를 놓고 청해진해운 측과 우련통운 측이 다퉜다. 그러다가도 이들은 과적이나 고박 불량의 잘못이 있다 해도 사고는 결국 선원들의 과실 때문이지 자기들 과실과 사고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유죄를 선고했다. 양형 기준 자체가 낮아,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에게는 배임·횡령죄를 합해 10년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는 2~6년형 또는 집행유예에 머물렀다. 이들의 항소심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가 부실한 상태로 출항하는 데 관여한 다른 피고인들도 일부 실형을 받았다. 세월호의 증선·인가 과정에서 청해진해운에 뇌물을 받은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등 공무원, 뇌물을 건넨 회사 간부들이 2~5년형을 받았다. 또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자동으로 펼쳐져야 할 구명뗏목이 펼쳐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이를 부실하게 점검한 한국해양안전설비 대표에게 1년6월형이 선고되었다. 구명뗏목이 빠르게 펼쳐졌다면 그것을 보고 승객들이 빨리 배 밖으로 나왔을 수도 있다. 반면 세월호 증개축 시 일부 공사가 법정 기준과 다르게 진행되었는데도 이를 지적하지 않은 한국선급 연구원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사고와 관계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시된 감사원의 중징계 요구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해경과 관련해 검찰은 123정 김경일 정장과 진도관제센터 센터장 및 관제사를 기소했다. 김경일 정장은 자신이 OSC(현장 지휘관)로 지정되었음에도 세월호와 통신도 하지 않고 매우 소극적인 구조만 한 점이 기소 사유가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정장의 행위와 승객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체 승객 가운데 56명에게만 국한해 인정했다. 김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함정일지 조작의 잘못을 합해 4년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진도관제센터 직원들은 CCTV에 찍힌 대로 평소 업무 시간에 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는 등 직무유기를 한 점은 인정되었으나(집행유예 선고), 사고 당시에 관한 직무유기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 지난해 11월18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맨 오른쪽)이 퇴임했다.

그는 따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   ⓒ연합뉴스



검찰은 최상환 해경 차장 등 해경 고위급 3인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최 차장은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특혜를 주려고 더 빨리 동원 가능한 바지선 대신 언딘의 바지선 리베로호를 투입하게 해 약 30시간 동안 구조를 지연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주소지가 인천이므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관할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으나 광주지검이 항소하면서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관할 재판부가 변경되면 수사 자료도 넘어가고 기소를 새로 해야 한다. 아무래도 피고인에게 유리해진다.


해경 지휘부는 사고 시각에 출동할 수 있는 함정이 소형 함정인 123정 한 척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출동 명령만 내렸을 뿐 효율적인 구조 계획을 세우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평소 여객선 사고의 대응 훈련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해경 지휘부 가운데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로 기소된 이는 없다. 사고 구역의 관할 책임자인 김문홍 목포해경 서장은 해임되었다가 서해지방청으로 옮겼고, 김수현 서해지방청장은 정년퇴임했다. 김석균 해경청장은 지난해 11월에 퇴임했으나 이는 징계가 아니라 해경이 국민안전처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정부 각 부서에 해임을 포함한 중징계를 요구했으나, 대부분 경징계로 그치거나 무시되었다.


정부 고위 공직자들은 어떨까. 정홍원 국무총리는 두 번이나 유임되었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유임되었다가 지난해 12월에야 퇴임했다.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와, 사고 당일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고 답변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도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았다(그는 올해 2월에 퇴임했다). 지난해 5월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린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세월호 사고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지고 실형을 받은 사람들은 선원, 관련 기업의 임직원, 항만청 공무원 그리고 해경의 하급 지휘관 한 명뿐이다. 국민이 납득할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진 고위 공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이들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성역 없는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 정부는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시킨 시행령을 입법 예고 중이다.



- <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  오준호 -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