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irene777 2015. 5. 20. 12:58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5년 5월 19일 -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실수할 수도 있다. 때론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이다. 그러면 인간 사회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고 품어 안는 것이 보통이다.


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취임 후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위한 과거사 청산에 나섰다.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주교가 참여한 TRC는 수많은 과거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조사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권탄압에 나섰던 가해자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TRC는 이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용서를 구할 것을 촉구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가해자 가운데 어려 명이 공개석상에서 자신들의 잔혹한 인권탄압 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한 후 용서를 빌었다. 진심어린 사죄는 남아공 흑인들을 감동시켰다. 남아공 정부와 국민들은 가해자들을 용서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무덤에 비석을 세워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 강기훈 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지난 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기훈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이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24년만의 일이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강 씨는 우서대필 사건의 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아오다가 비로소 혐의를 벗은 셈이다.


사건이 발생한 91년 5월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였던 김기설 씨는 “폭력살인 만행 자행하는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인 채 건물에서 투신했다. 그 무렵 경찰의 집단구타로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사망한 뒤 ‘분신 정국’이 잇따르던 때였다. 김 씨가 사망한 후 검찰은 그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며 동료였던 강기훈 씨를 지목했다. 강 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자살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강 씨는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강 씨의 ‘유서대필’ 사건은 보수 세력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보수 신부로 유명한 당시 박홍 서강대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강 씨를 맹비난 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써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뿌린 격이 됐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2007년 참여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 씨의 새로운 필적 자료를 바탕으로 강 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강 씨는 이듬해 재심을 청구했고, 7년 뒤인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마침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엊그제 대법원이 이를 최종 확정했다. 현재 간암 투병중인 강 씨는 이날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부의 정중한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당시 수사 담당 검사와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서 그 단맛을 즐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화 변호사는 이날 트위터에서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강기훈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전례로 본다면 이들은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사과하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