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라?, 교육자 맞나?
진실의길 김용택 칼럼
- 2015년 5월 20일 -
“나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절대로 자살하지 않을 것임을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지난 18일 자 국민일보가 보도한 학부모의 고발장에 나오는 글이다. 중·고등학생 얘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 그것도 1학년 학생에서 받겠다는 서약서다. 지난 18일 자 국민일보 “자살 절대 않겠다고 서약하고 증인 서명 받아와!”… 어떻게 이걸 초등 1학년생들에게…? 라는 기사를 보면 숨이 막힌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이미지 출처 : 세계일보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그게 뭐 문제가 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선량한 시민들에게 ‘성폭행 하지 않겠다고 서명해!’, ‘도둑질 하지 않겠다고 서명해!’ 하면 기분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인권의식이 없으면 사리분별이 안 되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그것도 자살이 뭔지도 모른 초등학고 1학년학생에게 그런 서약을 받아 오라니 교육부가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1989년. 전교조교사 해직사태 때 일이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교육부가 ‘전교조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을 학교에 보내자 수구언론들은 한목소리로 극악무도한 전교조 교사를 찾아내 학교에서 추방하는 게 애국이이라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당시 교육부가 학교에 보낸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을 보면 어이가 없다.
-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 신문반, 민속반등의 특별반을 이끄는 교사
-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 탈춤, 민요, 노래, 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
-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 자기 자리 청소를 잘 하는 교사
- 학부모 상담을 자주하는 교사
- 사고친 학생을 정학이나 퇴학등 징계를 반대하는 교사
-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을 보는 교사
이런 교사라면 표창을 해야 할 대상이지 어떻게 교육을 망치는 법범자일까? ‘촌지를 받지 않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고,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가 왜 문제교사인가? “전교조교사=빨갱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고 전교조교사를 찾아내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이 애국이라는 논리가 통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세상에 살다 보면 별별 일을 다 보고 산다. 경우에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 잘되는 걸 못 보는 놀부 같은 사람도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먹는 음식에 발암물질을 넣기도 하고,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목숨까지 거는 용감무쌍한(?)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민초들이야 살기 위해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 언론인들, 학자들, 종교 지도자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나 지식인들도 원칙 없는 짓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정당에 철새정치인들이 들락거리고, 유신을 한국적민주주의라고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노동자를 못살게 구는 논리는 만들어 준 댓가로 유명인사가 있는가 하면 ‘아니면 말고..’ 식의 후안무친한 언론인들조차 활개를 치고 있다.
교육을 하는 학교에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학생에게 자살을 절대 하지 않겠는 서명을 받아오라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며칠 전 전체교직원들에게 이런 공문을 보냈던 일이 있다.
“나는 금품향응, 편의를 제공하거나 제공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알선 청탁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않겠습니다.
공직자의 기본덕목은 청렴! 업무처리를 공정과 투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겠습니다.”
교사들이 청렴하게 살도록 해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취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모든 교사들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이런 인권침해를 민주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3월 초, 새학기 시작되면서 ‘좋은 교사운동’이라는 교원단체에서는 이런 운동을 벌였던 적이 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새 담임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촌지나 음식 접대는 절대 사절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님께도 부끄럽지 않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2012년 3월2일 ○학년 ○반 담임 ○○○드림.”
‘좋은 교사운동’이라는 교원단체가 추진했던 전교생 학부모에게 편지보내기 운동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못쓴다고 했다. 자살과 같은 불행한 일을 막아보겠다는 선의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촌지없는 학교, 신뢰받는 교사를 위한 노력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살아 가는 선생님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이런 짓(?)을 해서 되겠는가?
모든 학생을 예비 자살자로, 또 모든 교사를 촌지나 받아 챙기는 파렴치로 보는 시각은 선량한 교사들에게 상처를 주는 인권 침해다. 자살예방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촌치와 같은 잘못된 관행은 교사자질향상을 위한 연수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일이다. 자살이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자살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학교에 어떻게 아이들을 믿고 맡기겠는가? 제발 이성이 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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