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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르스 정국 민심 ‘병 보다 더 무서운 왕따’

irene777 2015. 6. 19. 02:58



메르스 정국 민심 ‘병 보다 더 무서운 왕따’

메르스가 두려운 것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기 때문… 정부는 이걸 알아야


진실의길  임두만 칼럼


- 2015년 6월 18일 -




예전에 우리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는 말을 썼다. 갓을 쓰는 성인식을 관(冠)례, 결혼식을 올리는 혼(婚)례, 장례 절차를 상(喪)례, 제사를 지내는 제(祭)례 등을 일컬는 말로서 일명 4례(四禮)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4례(四禮)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투를 올리지 않는다고 성인이 안 된 것도 아니고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조상에게 결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관혼상제가 아니라 그냥 애경사(哀慶事)라 하여 혼례와 상례의 참여를 예의로 친다.


하지만 경사로 치는 혼례 등 축하의 자리에는 바쁜 일이 있거나 하며 불참해도 그리 큰 흉은 아니다. 반면 애사인 상례의 결례는 아니다. 가까운 이의 조문을 빠뜨리는 것은 큰 결례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조문 문화는 각별하다. 이럴진대 병문안은 또 어떤가? 가까운 이의 입원 소식을 들으면 열 일을 제치고 병문안을 하는 것이 우리네의 인사 문화다.




▲ 지난 17일 동대구역 입구에서 대구시청 공무원과 보건소 직원들이 열화상 카메라를 

  역사 입구에 설치한 후 37.5도 이상의 고열자를 가려내고 있는 중이다. ©신문고뉴스



그런데 메르스란 질병은 이런 기초적 인간관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두려워 한다. 질병 자체의 두려움은 사실 부차적이다. 병 들면 혼자서 격리병동에서 질병과 외로움이란 이중고와 싸워야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이 병이 들었으면 다른 가족은 또 사회와 격리된다. 어린이는 학교도 갈 수 없고 직장인인 직장도 갈수 없으며 자영업자는 업장에도 나갈 수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어 왕따를 피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투병하다 사망하면 부고를 하고 상례를 치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가 대신 화장하여 유골만 유족에게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거론한 우리의 문화로 봤을 때 메르스는 ‘저주의 질병’이다.


이러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이 국가이며 이 사회 기득권층이라고 모든 유익을 누리며 살았던 이들의 ‘무사와 안일’이란 사고였다.


1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대전에서 치료를 받던 80대 여성이 숨졌다. 그는 지난 3일 숨진 36번 환자의 배우자다. 메르스로 인해 부부 피해자가 처음 나온 것이다.


이 여성 환자는 먼저 숨진 자신의 남편을 병간호하다 메르스에 걸렸다. 남편이 먼저 같은 병실 환자에게 감염되었으며 아내도 감염되었다. 고령에 고혈압과 폐렴 등을 함께 진단받은 상태에서의 메르스 감염은 그녀를 생존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앞서 숨진 그녀의 남편도 천식과 세균성 폐렴 등의 기저질환을 앓다가 입원하여 메르스에 옮은 뒤 지난 3일 숨졌다.


더구나 그는 사망 다음 날 메르스 최종 확진(36번) 판정을 받았다. 그러니 오늘 사망한 아내는 남편이 메르스 환자인 것도 알지 못한 채 간호하다 병을 얻었고 끝내 숨졌다.


그런데 이들의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 대부분은 자택에 격리 조치돼 앞서 아버지인 36번 환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편은 죽었는데 아내는 음압병실에서 혼자 격리되어 투병을 했고 자녀들은 자택에 격리되어 아버지의 임종도 못 지키고 어머니의 병간호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두 부부가 모두 사망한 뒤 해당 조치가 해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을 보며 메르스 공포심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당국이 지금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이 병원장 하나 질책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이 사태가 종료되면 국가나 병원을 상대로 한 무수한 소송이 벌어질 것이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c_flower911&uid=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