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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근혜 도운 이상돈 교수 -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판”

irene777 2015. 6. 28. 00:39



박근혜 도운 이상돈 교수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판”


- 시사IN  2015년 6월 26일 -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지켜본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를 수습하기보다 키우는 스타일이다. 

자존심 센 대통령과 팀워크 없는 내각이 합쳐져 ‘최악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 

감당은 국민 몫으로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이렇게까지 위기에 취약할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 힘을 보탠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6월16일 만났다. 이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자기 속내를 아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라는 색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도 물었다. 이 명예교수는 해법 대신 이렇게 답했다. “사과한다.”


대통령이 왜 이렇게 위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인가, 그게 핵심인 것 같다.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과 과거부터 같이했던 사람들이 정권 주축 세력이 되잖나. 그런데 이번 정권은 안 그렇다. 흔히 대통령이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보다도 박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오래 알아온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본다. 부담스럽고 싫은 거다.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 같은 사람도 그런 성향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렇게(‘탈박근혜’) 된 거라고 본다.


대선 당시 문고리 4인방, 요즘은 3인방인데, 거기는 ‘집사’라 예외인가?

그럴 거다. 그런데 집사로만 있으면 괜찮은데 집사 이상의 역할을 하니까…. 단적인 예로 대선 때 역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인혁당·정수장학회 등등. 그걸 맡아서 준비한 게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었다. 과거사를 사과하는 메시지를 만들어줬는데, 정작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걸 읽더라. 막판에 엉뚱한 쪽지를 써줬던 게 정호성(3인방 중 메시지 담당자)이라는 거다. 그래서 안대희도 굉장히 좌절감을 느꼈다. 후보도 후보대로 그런 걸(역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 좋아하지 않더라 그러고. 집권하고 안대희 총리 카드를 뽑았던 건 세월호 직후라 어쩔 수 없었던 거다.





▲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 힘을 보탠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대통령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사과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시사IN 신선영



안대희 총리 후보가 낙마할 때를 보면 황교안 총리 만들듯 청와대가 방어하지도 않았다.

뭔가 시그널이 있었을 것이다. 전관예우로 여론이 나빠지니까, 차라리 잘됐다 하고 손 털었거나. 황교안은 안대희하고 사람이 다르다. 안대희는 자기한테 와서 ‘후보님이 사과하셔야 된다’고 말한 사람 아닌가. 박 대통령한테는 그런 게 오래간다.


지금 보이는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안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대선 캠프의 위기 때는 어땠나?

그 사건(인혁당 관련 발언) 뒤로 캠프가 와해 직전이었다. 위기가 오면 조기에 수습하기는커녕 일을 키우는 스타일이다. 역사관 문제도 결국 수습을 한 게 아니지. 본선은 엉망진창으로 그냥 간 거다, 솔직한 얘기로. 그걸 수습한 게 김무성하고 권영세인데, 내가 아는 한 김무성 카드는 박 후보의 결정이 아니었다. 의원들이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 난다고 해서 후보의 승인을 따내온 거다. 그러고 나서 NLL 공방으로 시선을 돌려버린 거 아닌가.


‘정쟁 만들어 덮어버리기’는 지금도 대통령이 즐겨 쓰는 해법이다.

이철희 평론가가 대통령을 ‘내추럴 본 파이터’라고 했더라(웃음).


대선 당시 MBC 파업 문제를 풀어보려다가 더 꼬인 장면도 위기관리 실패 사례다.

MBC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고 내가 직통 채널이었다. 당시 MBC 노조 기자회견 내용이 다 사실이다. 100% 사실이지. 후보 본인이 나를 통해서 약속했다(MBC 노조는 2012년 7월, 170여 일 이어지던 파업을 접었다. 같은 해 11월, 노조의 핵심 타깃이던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부결됐다. 그러자 노조는 11월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가 김재철 퇴진 약속을 했었다”라고 폭로했다).


약속을 해놓고 갑자기 돌아선 이유가 뭔가?

갑자기 돌아선 것도 아니다. 이후에 그냥 침묵해버리면 끝이다. 스타일이 그렇다. 아무 피드백이 없으면 그걸로 끝인 거야(웃음). 청와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모든 게 그럴 거다. 그럼 더 이상 아무도 진도를 못 나간다. 뭔가 일을 되게 해보려는 사람은 답답하겠지만 공무원들은 천국이다. 공무원에게는 역대 이렇게 편한 정권이 없다.


메르스 국면에도 대통령이 안 나타나니 며칠씩 진도가 안 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면 딴사람이라도 일을 할 수 있게 신호만 주면 되는데, 그것도 안 한다.


임기가 절반 남았다. 통치 스타일이 바뀔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자기 스타일을 바꾸기엔 자존심이 너무 세다. 틀렸다고 인정하는 거니까 너무 상처를 받는다. 브레인스토밍이 안 되는 스타일이다. 여러 사람 의견을 두루 듣는 게 안 되니까 옆에 누가 지키고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옆 인물이 괜찮으면 의외로 잘 갈 수도 있는데, 지금처럼 가면 굉장히 취약하다.


‘자기 속내를 아는 사람을 꺼린다’면 어떤 사람을 쓸 수 있을까?

아예 모르는 사람 아니면 하찮은 인연, 그런 식이다. 그러다 보니까 내각에 팀워크가 없잖은가 다들. 리더십이 굉장히 취약하다. 관료 사회도 굴러갈 수가 없다. 장관이라고 온 사람이 관료 사회 눈에도 납득이 안 되거든. 위기가 발생하면 지휘 통솔이 안 되는 내각이다. 대통령과 밀접하기를 하나 개인 능력이 되기를 하나 내각에 팀워크가 있기를 하나, 아무것도 없다.


나머지 임기 동안에도 우리는 이렇게 위기 상황에 허둥지둥하는 대통령을 감당해야 하나?

내가 할 말이 없다(웃음). 그래서 사과했고. 그랬더니 김광두 교수가, 그분이 박근혜 옆에 있던 시간으로 치면 교수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분인데, 사과 가지고 되겠느냐고, 같이 광화문 가서 석고대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


대선 당시에는 약점을 알고도 지지한 건가?

약점이야 여러 번 들었지만, 2007년 당내 경선에서 지고 사람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봤다. 2010년 4월 초에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는데, 보자마자 반가워하면서 하는 말이 “4대강 때문에 수고가 많으세요” 그러는 거다. 그때 내가 한창 4대강 사업 반대로 법정 싸움하고 답사 다니고 그럴 때다. 당시 박 의원이 집에서 신문을 <중앙일보>하고 <경향신문>을 봤다. <동아일보>하고 <조선일보>를 싫어했다.


4대강 문제로 처음 인연이 닿은 건가?

2011년 6월에 내가 <조용한 혁명>이란 책을 내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그 책의 한 절반 정도는 4대강 비판이다. 그때 박근혜 의원이 그 자리에 참석하려고 비서가 왔다 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굉장한 시그널이다. 그때 민주노총에서 데모하는 바람에 주위를 다 막아서 못 왔지만.


4대강 문제에 의지가 있었다고 본 건데.

나는 이렇게 본다. 김종인으로 대표되던 경제민주화는 집권 이후 재벌에 의해서, 내가 주력했던 4대강 진상 규명은 MB 세력의 저항과 TK 보수파 때문에 좌절된 것으로. 이 방향을 굳힌 게 김기춘 체제였다.



- 시사IN  천관율 기자 -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