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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朴의 창으로 朴을 겨누다 - SBS 취재파일

irene777 2015. 7. 9. 18:32



[취재파일]

유승민, 朴의 창으로 朴을 겨누다


- SBS 뉴스  2015년 7월 9일 -




유승민 원내대표가 원내 사령탑의 직책을 내놨다. 의원총회에서 사퇴권고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직후였다. 의총 전부터 이미 사퇴 권고가 기정사실로 알려져 있던 만큼 관심은 사퇴의 변이었다. 단문체의 길지 않은 그의 회견은 논란을 남기기에 충분할 만큼 찰졌다.



유승민, 朴의 창을 들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밝힌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였다. 법과 원칙... 이 두 단어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그토록 강조해왔던 정치 덕목이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실상 자신을 탄핵한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끝까지 버틴 이유가 대통령이 강조한 바로 그 가치 때문이었다고 되받아 친 것이다.


대통령을 향해 아쉬움이나 원망을 던졌더라면 '아, 그렇구나'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정치권을 조금이라도 취재해본 사람이라면 유 전 원내대표가 남긴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朴의 창으로 朴을 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


"낡은 정치 반드시 청산하고, 원칙과 신뢰의 새로운 정치 만들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11월 부산 유세 때 한 말이다. (평가야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임기 내내 고질적인 지역주의 청산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 타파를 외쳤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주도세력으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친노 진영에서 과거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 세력을 비판할 때 자주 인용했던 문구가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다. 요즘도 진보 세력에서 종종 인용되곤 한다.


그 문구가 이번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회견문에 등장했다. 헌법에 나오는 말이니 누구라도 인용 못할 말은 아니나 보수권 인사가 이를 언급한 건 이례적이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말이 묘하게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묘하게 닮아 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 전 원내대표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에 덧나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회창 전 대표의 '따뜻한 보수'를 입다


지난 2008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이 대표가 내세운 기치는 '따뜻한 보수'.. 이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보수 본래의 목적이고 핵심 가치"라며 "이제 (따뜻한 보수)를 보수의 아젠다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이 만들어졌다가 새누리당에 흡수 통합될 때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회창 전 대표의 생각을 누구 못지 않게 듣고 지켜본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의 '따뜻한 보수'는 엘리트 출신 정치인이자 무소불위의 총재로 군림하고도 대선에 2차례나 실패했던 그 자신을 스스로 반면교사로 삼은 듯한 말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이회창 전 대표의 생각을 차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뜻한 보수'를 말이 같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그가 했던 말과 이 전 대표가 했던 말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죄송'한 대상은 국민…대통령은 없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회견 말미에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아직 지키지 못했다"면서도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벌써부터 대권행보라는 말까지 나돈다. 솔직히 말해 당내 세(勢)가 없는 유 전 원내대표가 그런 꿈을 꾸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회견에서 여권 인사가 사퇴의 변을 밝힐 때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대통령께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만 있었을 뿐이다.


여권에 더 이상 '신화(神話)'를 가진 정치인은 남아 있지 않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용을 꿈꿀 수 있는 시대다.



- SBS뉴스  남승모 기자 -



<출처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065324>






▲ 유승민 사퇴 회견 풀영상…"법과 원칙 정의 지키고 싶었다"


https://youtu.be/Z94wPQBlH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