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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조 ‘철의 여인’ vs 짝퉁 ‘철의 여인’

irene777 2015. 8. 29. 17:34



원조 ‘철의 여인’ vs 짝퉁 ‘철의 여인’

절친이라면 친구로부터 배우고 본받을 것은 겸허하게 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KPCC) 소장


- 진실의길  2015년 8월 26일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서독의 GDP는 대략 1조 달러, 1인당 GDP는 15,70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2015년 추정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GDP는 1조 4,351억 달러, 1인당 GDP는 28,338달러이지요. GDP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의 서독보다 조금 많고, 1인당 GDP로는 오히려 우리가 두 배 가까이 더 높습니다. 1989년 당시 서독(6300만)과 동독(1600만)의 인구 차이가 대략 4:1, 1인당 GDP가 3:1인데 비해 2012년 현재 남북한의 인구 차이는 2:1, 1인당 GDP는 대략 20:1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것만 놓고 볼 때 2015년의 한반도는 1989년의 독일보다 통일로 진입하기 위한 여건이 훨씬 더 좋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서독보다 인구 차이는 적게 나지만 그것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의 경제력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정세의 흐름도 그 때와 비교하여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한·중 및 한·러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혈맹관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현재 도리어 북한보다 남한에 더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왜 1989년의 독일은 통일의 기운이 최고조로 무르익었는데, 2015년의 한반도는 남북 대치국면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수시로 야당과 대화하고, 밤샘 협상으로 극적인 타결을 이끄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지난 2013년 9월 총선에서 대연정에 합의할 당시에도, 42%대 26%의 압도적 차이로 승리를 거두면서 단독 과반에 5석 모자라는 311석을 차지했고, 60%대의 국정수행 지지율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야당과 타협한 것이지요.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현직 총리인 메르켈이 직접 야당 당사를 찾아 마라톤 협상을 진두지휘한 장면입니다. 17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야당 지도부를 설득하며 성사시킨 거지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51.6%,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8.0%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간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42%, 민주통합당 득표율을 36%입니다.


상대적으로 더 압도적인 차이로 대승을 거둔 독일의 여성 총리는 야당과 수시로 대화하고, 정책에 대한 타협을 위해 직접 당사까지 찾아가 마라톤 협상을 벌이는데,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한국의 여성 대통령은 야당과 소통을 잘 이끌어왔던 여당 원내대표까지 갈아치우면서 비타협 노선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은 우리로 말하자면 북한 출신인 동독 출신 정치인을 과감히 총리로 선출하는데 반해 우리는 북한 출신도 아닌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든 남한 사람들까지 ‘종북’으로 몰아가며 비난하고 배척하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차이로 인해 독일인에게는 통일이 열리고, 한국인들에게는 통일의 길이 봉쇄되고 있는 거지요. 이게 바로 리더십의 격의 차이입니다.





원조 ‘철의 여인’ 매거릿 대처가 집권했던 기간 유럽의 중심은 영국이었습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의 찰떡호흡으로 대처는 진정한 보수주의의 롤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롭게 부상한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이 집권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유럽의 헤게모니는 영국으로부터 독일로 넘어왔습니다. 그리스와 스페인 재정위기 당시에도 독일의 리더십은 빛났고, 월가 금융위기 당시에도 유럽은 독일의 리더십으로 순발력 있게 대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철의 여인’이 집권하는 기간 동안 한국은 일본과는 최악의 외교관계를 맞고 있고, 미국과 중국 간 패권대결 속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동북아 외교의 중심국가에서 주변국가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중국이 러시아 및 인도와 거리를 좁혀가며 대륙 동맹의 꿈을 현실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일 안보동맹의 주도권을 일본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물태우’로 불리웠던 노태우도 북방외교로 러시아 및 동유럽과 수교 릴레이를 펼쳤고, 경제에 무능했던 김영삼도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임기 중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했고,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도 임태희-김양건 싱가폴 회담을 성사시키며 긴장 해소를 위해 노력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를 풀어갈 실마리조차 못 찾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우리 안방에서 야당과도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국가 간 혹은 남북 간 협상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 안 새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거겠지요.


이번에 40시간 마라톤 협상 끝에 겨우 남북한 간 접점을 찾았지만, 보수언론과 공중파 뉴스는 온통 박근혜 찬가를 부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는 기존에 북한이 써왔던 ‘벼랑끝 전술’을 그대로 차용하여 협상에 임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냈다고는 하나, 공동선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과연 어떠한 양보를 얻어냈는지 내용이 아리송합니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쓰는 것도 보기가 역겹고 안타까운데, 국력 차이가 50배 이상 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똑같이 ‘벼랑끝 전술’을 써서 대단히 사소한 양보(?) 하나 얻어내고 자화자찬에 빠져있는 모습이 어이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담대하고 통 큰 제안으로 감동을 끌어낼 수는 없었을까?


박근혜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절친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절친이라면 친구로부터 배우고 본받을 것은 겸허하게 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친구와 비교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게 아니라 인정할 것을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기왕에 남북관계가 해빙 국면에 맞은 만큼, 이제 시작에 불과한 작은 일들 때문에 우쭐해 하거나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북관계를 풀어갈 것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58&table=byple_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