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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돈 - 국립공원은 보전이 우선이다

irene777 2015. 9. 15. 04:52



[이상돈칼럼]


국립공원은 보전이 우선이다


- 경향신문  2015년 8월 25일 -





▲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선 미국의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의 작품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미국인의 자연관에 많은 영향을 준 사진작가로 꼽히는 안셀 아담스는 국립공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우리나라의 민도가 안셀 아담스의 사진전을 열 정도로 성숙해졌으니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셀 아담스가 가장 사랑했던 자연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인데, 그가 찍은 요세미티 사진은 자연의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자연 그대로 보전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사람은 존 뮤어다. 미국의 유서 깊은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을 창설한 뮤어는 평생토록 요세미티의 웅장한 자연을 사랑하면서 살았다. 뮤어는 야생자연탐험가이기도 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교분이 있었다. 자연의 가치를 잘 알았던 루스벨트는 국립공원을 자연 그대로 보전하는 데 기여했고, 자신의 친구이자 산림학자이고 자연보호론자인 기포드 핀초를 산림청장으로 임명해서 오늘날 미국의 자연보호정책에 기초를 놓았다.


안셀 아담스 사진전이 서울 시내에서 열리고 있는 시점인 오는 28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위원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설악산 케이블카에 관한 최종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루 전에 전문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오고 그것을 토대로 국립공원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할 모양인데, 이번에는 케이블카 설치를 승인할 것 같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환경부 차관이 위원장이고 각 부처에서 선임한 정부 위원이 10명이나 되는 기형적인 국립공원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와 개발론자들의 압력을 이겨 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유일한 희망은 전문위원회에 참여한 학자들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하는 것뿐이다. 두 차례에 걸쳐 부정적 결론을 낸 바 있는 전문위원회가 케이블카 노선의 위치를 조금 바꾼 3차 안에 손을 들어준다면 본 위원회는 일사천리로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는 측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유럽 알프스에 케이블카가 있고 중국 황산에는 정상부에 호텔이 있음을 예로 든다. 반대하는 측은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산림이 훼손되며 산양 서식지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케이블카의 사업성을 두고도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가 몇 년째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이명박 정권 말기에 환경부가 설악산과 지리산을 케이블카 시범지구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으로 반만년 동안 유구하게 흘러온 우리의 하천을 파괴한 이명박 정권이 그런 결정을 했으면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전 정권에서 추진한 졸속정책으로 보고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환경부는 그들이 묵인하고 동의해 주었던 4대강 사업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듯이 이명박 정권의 또 다른 잔재물인 케이블카 정책도 재검토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환경부와 산하 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영혼이 없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케이블카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설악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이다. 도립공원이 이용과 보전을 함께 도모한다면 국립공원은 보전이 우선이다. 국립공원 제도는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고 미국의 국립공원 정책은 철저하게 보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연 그대로 보전돼 있는 요세미티가 온갖 탐방시설로 범벅이 되어 있는 나이아가라와 다른 점은 그것이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말에 국립공원 제도를 도입했으나 초기에는 이용을 촉진하려는 측면이 많았다. 1990년대 들어서 덕유산 국립공원 한복판에 스키 리조트가 들어서고 곤돌라가 설치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국립공원 정책은 보전 위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북한산 등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던 시도는 무산돼 버렸다. 그리고 10여년 세월이 흘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더니 설악산과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케이블카가 전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립공원인 대둔산과 두륜산에 설치된 케이블카, 그리고 자연훼손이 별로 없는 통영 앞바다의 해상 케이블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설악산 주능선에 삭도(索道)를 걸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겠다는 발상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설악산에 삭도가 새로 걸리면 지리산, 한라산, 월출산, 속리산, 소백산, 북한산 등 전국 각지의 국립공원 정상부에 삭도가 걸릴 것이다. 그러면 국립공원은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25203533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