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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호중 - 시민적 보편성의 혁명을 꿈꾸며

irene777 2016. 1. 8. 06:13



[정동칼럼]


시민적 보편성의 혁명을 꿈꾸며


- 경향신문  2016년 1월 5일 -





▲ 이호중

서강대 교수



2015년을 보내면서 든 생각은 진실을 가두려는 오만한 권력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였답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인 저는 지난해 12월14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된 청문회에 참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초기, 해경을 비롯한 정부의 구조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청문회였지요. 퇴선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123정장 외에 당시 해경의 지휘라인에 있던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과 함께 참사의 진실을 성찰할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저의 실낱같은 기대는 허망한 꿈이었나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책임이 문제될 만한 대목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회피했고, 승객의 퇴선 유도 등 신속한 구조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하지 않은 대목을 추궁한 질문에는 하급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치졸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구조활동의 지휘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퇴선조치는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이 했어야 할 일이라며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고 강변하는 모습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지요.


청문회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속한 구조활동을 지휘할 책임이 있건만, 정작 목숨이 경각에 달린 피해자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구조활동은 하나도 한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세월호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승객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침몰현장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려는 적극적인 지시를 해경 지휘라인의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122구조대나 특공대 등 신속한 구조를 위해 정작 필요한 구조인력은 현장에 갈 헬기 등 이동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현장출동이 늦어졌는데도 어느 누구도 체계적인 지휘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청문회 증인들은 ‘경황이 없어서’ ‘긴박한 상황이라서’라고 말하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신속한 구조활동을 하라고 국민들이 세금 내서 운영하는 조직이 바로 해경인데, 경황이 없어서 골든타임에 제대로 구조활동을 못했다는 답변을 늘어놓으니, 정말 억장이 무너지더이다.


청문회에서 목격한 또 하나의 현상. 고위직 공무원일수록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책임을 통감하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저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진실을 외면한 사과는 절대로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다는 것. 진정한 사과란 용서를 구할 자격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실에 입각해 자신의 잘못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과는 진실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청문회 3일의 참담한 심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일 외교장관 협상이라는 또 하나의 참담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는 많은 역사적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범죄의 진실을 어물쩍 덮어버리려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지요. 세월호와 위안부, 진실을 묻으려는 불의(不義)의 권력질을 지켜보면서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저는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를 저버리는 짓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은 언제나 권력의 편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진실이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 경험하는 보편성에 기반해 정의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는 부정의 경험 속에,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험 속에 진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묻는 각자의 경험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연대의 끈으로 되살아날 때 진실은 권력의 추악한 은폐 기도를 뛰어넘으면서 자신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것이 2016년을 뜨겁게 달구어야 할 시민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감히 2016년의 시민혁명을 꿈꿉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052124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