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박원호 - 알파고의 바둑, 인간의 미학과 민주주의

irene777 2016. 3. 20. 03:10



[정동칼럼]


알파고의 바둑, 인간의 미학과 민주주의


- 경향신문  2016년 3월 15일 -





▲ 박원호

서울대 교수 (정치학)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5차례 대국이 막을 내렸다. 승패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이것이 새삼 인공지능과 우리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그 함의를 우리 민주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되새겨 보려고 한다.


우선, 구글의 딥마인드가 성취한 의미를 폄하하는 관점, 즉 계산기가 인간보다 당연히 빠르다거나 1200대의 컴퓨터가 ‘훈수’를 둬서 애초에 불리한 게임이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바둑이란 경기가 하수 1200명의 의견을 취합한다고 해서 고수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더 중요하게는 자료로 입력된 기보들의 총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파고가 선보였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요소들의 총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의 출현을 복잡계 이론에서는 ‘창발’이라 부른다.


바둑이 가지는 흥미로운 특징은 아마 미학과 효율성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터움’과 ‘무거움’이 미세한 차이로 구분되며, ‘얇은 형세’와 ‘경쾌한 행마’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결정되는 반상만큼 미추(美醜)에 대한 집착이 확고한 곳은 없다.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바둑에서는 아름다움이 승리로 직결된다는 점이며, 이러한 미학과 효율성에 대한 축적된 지적 체계가 구축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놀라운 점은 이러한 지적 체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수’ 즉 아름답지는 않지만 효율적인 수를 발견하고 몇 번 선보인 데 있다.


바둑과 인생을 비유하는 수많은 이야기들과는 무관하게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미래는 가까이 온 것으로 보인다. 운송과 의료, 사법, 경제, 그리고 제반 정책 영역에서 단순한 업무부터 복잡한 결정과정까지 최소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일은 일상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우리의 민주적 거버넌스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하는 난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업이다. 앞서의 비유를 빌리자면, 우리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효율적인 정책과 결정들을 얼마나 믿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어쩌면 민주주의 정치의 원칙을 새삼 반추하는 일이기도 하다. 첫째, 과정에 대한 세심한 설득과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이세돌 9단이 패배 후 복기할 대상이 없어서 황망하게 앉아 있었던 것처럼, 더 나은 정책과 더 나은 해결 방안이 왜 더 효율적인 것인지에 대한 과정의 설명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정책적 결정들을 인간의 민주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인 정답보다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것이 가능한 공유된 가치관에 기반을 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책임성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제4국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중대한 실수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사용된 자료에서 최종적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섬세한 통제와 책임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인공지능이라는 블랙박스에 어떤 자료들이 들어가고 어떤 것들이 들어가지 않는가, 어느 관심 영역에 가중치를 줄 것이며,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과정들이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민주정치의 과정은 공동체의 총체적 번영과 안녕을 지향하는 동시에, 그 구성원들을 더 나은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트럼프라는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 후보를 경험하면서 인종갈등이나 이민자 문제를 더 새롭고 깊게 고민하게 됐으며, 한국의 시민들은 필리버스터라는 생소한 정치적 현상을 경험하면서 한국 의회의 역할과 인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새로운 수를 통해 더 나은 바둑을 두게 되고, 나아가 그것이 새로운 정석(定石)이나 기풍으로, 바둑의 미학으로 포괄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우리 삶이 접합되는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외재적 충격을 견딜 만큼 충분히 건강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질문을 알파고가 우리를 대신하여 던져주지는 못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52131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