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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준형 - ‘중도집결’ 한국정치, 과연 답일까?

irene777 2016. 3. 20. 21:58



[정동칼럼]


‘중도집결’ 한국정치, 과연 답일까?


- 경향신문  2016년 3월 17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미국 대선에서 아웃사이더 열풍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묻는 공세에 양당의 기성 정치세력들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역공을 펼쳐왔다. 특히 공화당은 트럼프를 두고 설마 하다가 발등에 떨어진 불임을 깨닫고 바빠졌다. 어찌 됐든 자기 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중진들이 앞다투어 때리기에 나서고, 비난광고를 내보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필립 스티븐스는 “대서양국가에는 트럼프와 동류인 선동정치꾼이 많다”는 글을 통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분노의 정치, 인종적 국가주의, 보호주의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유럽에서 이어져 온 정치광풍의 불쾌한 단면이자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안으로 온건한 중도정치인이 중심을 잡아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정치극단주의의 발흥에 대해 중도화를 외치는 미국과 유럽을 보면 우리 정치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남미적인 좌파 복지포퓰리즘 논쟁이나 유럽적인 우파 신자유주의 또는 배제주의적 포퓰리즘과 유사한 논란들이 우리에게도 있었지만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한국정치의 겉모양은 선진국의 지성이 바람직하다는 온건중도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이번 총선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는 정책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탓도 있고, 공천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내부분열 탓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정치의 중도 집결현상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 상황은 변화, 그것도 과감한 개혁이 시급하다는 데 이견이 없으면서도 새롭고 획기적인 공약은 없다. 여야 모두 절박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여야 모두 기득권화되고, 게다가 야당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대여투쟁은 약해지고 야당끼리 남은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야권은 지난 대선 이후 정책공약의 주도권과 저항력을 상실해버렸다. 야권에는 중도화가 필수 생존전략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집권해야 진짜 개혁이 가능하니 중도지지층 확보를 통한 집권을 위한 위장전술 같은 것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정말 중도집결하면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에서는 집권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희망적 사고거나, 아니면 변명, 또는 오판의 소산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최악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훼손, 그리고 평화 부재 상황에서 보수기득권의 좌클릭은 -시간이 갈수록 기만임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적어도 시대적 요구를 간파한 것이지만, 진보의 우클릭은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다. 야권의 권력적 기반은 변화와 저항인데, 이를 포기하면서 지지층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약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 전선을 외면하는 야당은 선거승리는 물론이고, 국민의 선택권과 희망을 앗아가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막장이지만,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은 엄중한 현실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히틀러를 닮은 비열한 극우적 포퓰리즘이지만 빈곤층으로 전락한 백인노동자들의 처지는 정치가 해결해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너무도 뚜렷한 전선이 존재하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적 현상도 없을 만큼 전선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거대보수 언론들의 이념 갈등 부풀리기를 통한 좌파몰이가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라면 언론권력의 위력에 새삼 놀라고, 또 절망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 밑바닥 민심의 분노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부재 속에 오히려 기득권의 교활한 포퓰리즘이 날개를 단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다수가 선택하는 대표성이 집권 후의 책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포퓰리즘의 경우 약점이 극대화된다. 그래서 선출독재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임기를 제한하고 반복적인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기집권의 경우 약점은 고쳐지기 지극히 어렵다. 야당의 보수화 덕분에 정권의 교활한 포퓰리즘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권력분립을 무시하고, 더욱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며, 배제주의적으로 되어간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극우포퓰리즘이 공화당 경선은 통과할지 몰라도 본선에서 걸러질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한국에서는 저항의 브레이크가 없어지면서 일본정치와 유사하게 현 권력집단의 포퓰리즘화가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어 훨씬 위험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7205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