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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해천 - 누구를 위한 단일화인가

irene777 2016. 4. 6. 14:32



[별별시선]


누구를 위한 단일화인가


- 경향신문  2016년 4월 4일 -





▲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MB정권 이후 야권의 선거전략은 ‘정권 심판론’을 기본 골격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와 2030세대 투표율 높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적어도 평범한 유권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과연 그런 바람몰이식 전략이 유효한 것일까? 선거철마다 패배의 경험을 반복하다보니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2012년으로 돌아가 보자. 많은 이들이 야권의 승리를 점쳤던 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눈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지만, 조심스럽게 승리의 가능성을 점치는 희망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논리는 ‘덧셈’이었다. 그러니까 비례대표의 득표 결과를 계산해보면,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득표율 합계가 46.03%인 반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득표율 합계는 46.75%라는 것, 즉 초박빙의 승부가 예측된다는 것이었다.


8개월 뒤 대선이 치러졌다.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야권 후보는 단일화되었고, 2030세대들은 이번만큼은 젊은이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투표장으로 향했다. 당일 오후 5시, 전국 투표율이 2002년 대선의 투표율이었던 70%를 넘어서자 야권 지지자들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적어도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말이다.


개표를 마친 다음날 새벽 1시경,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시종일관 앞서던 집권여당 후보는 출구조사의 예측치보다 더 큰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108만표 차였다. 68.5%와 70.0%의 20대와 30대 투표율, 92.0%와 89.3%의 광주와 전남 지지율, 39.9%와 36.3%의 부산과 경남 지지율이라는 성과를 얻었음에도 야권 후보는 패배했다. 그러니까 전략대로 선거를 치르고 역대 최다 득표를 기록했음에도 승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50대 유권자의 급격한 보수화를 지목했다. 실제 출구조사 결과로 계산해보면, 82.0%의 투표율을 기록한 50대 중 약 399만명이 여당 후보를, 약 239만명이 야권 후보를 지지했다. 약 160만표 차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10년 전의 대선에서는 40대의 나이로 보수와 개혁 사이에서 힘의 균형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76.3%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40대 중 약 288만명이 노무현 후보를, 그리고 약 286만명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일부는 왜 10년이 지난 후 정치적 입장을 바꾼 것일까? 단순히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 효과 때문일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가파르고 그 규모 역시 지나치게 크지 않은가?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1953~1962년생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들 대부분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청소년기를 보낸 뒤 산업화의 흐름을 따라 대거 도시로 이동했으며, 1987년에는 20·30대의 나이로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한복판을 통과했다. 계층적 분화를 본격화한 시점이기는 했지만 당시 이 세대가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87년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혹시 이들의 급격한 보수화는 1987년 이후 ‘민주화’라는 대의 아래 결집되었던 다양한 이해관계의 담지자들이 대오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은 아닐까? 이 대오의 또 다른 주축이었던 호남 유권자들마저 이번 총선에서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어쩌면 제1야당이 ‘87년 체제’의 설계자이자 지난 대선의 여당 참모를 비대위 수장으로 임명한 것도 이전의 정치 논리로는 세력 이탈을 막기 어렵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일이 다가오자 “단일화만이 살길”이라는 익숙한 구호가 또다시 반복 재생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전선을 구축했던 개인과 집단들이 양극화와 저성장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각자의 이해관계를 표명하고 나섰는데, 그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제1야당은 “우리는 ‘여전히’ 하나”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04210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