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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태훈 - 민주주의 옥죄는 유권자 권리규제

irene777 2016. 4. 6. 14:49



[정동칼럼]


민주주의 옥죄는 유권자 권리규제


- 경향신문  2016년 3월 31일 -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로 의심되면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겠다.” 암 덩어리 같은 규제를 물에 빠뜨려 살아남지 못하면 모두 철폐하라는 취지의 대통령 발언은 세월호를 연상케 하는 비유로 논란거리가 됐다. 기업 활동의 걸림돌인 규제만 풀면 경제가 성장할 것인데, 뒷짐 지고 있는 국회, 특히 야당의 발목잡기 탓에 경제가 이 모양이라며 남 탓만 하는 태도도 문제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경제성장과 관련된 규제만 규제로 보이고 시민의 권리행사에 산재한 손톱 밑 가시에는 눈 감고 있는 것 같아 선거철을 맞아 더욱 답답해진다.


다른 법령에 명문의 금지 조항이 없다면 규제가 없다고 보는 네거티브 규제 개선 방식은 원칙적 자유와 예외적 규제 방식이다. 시민의 기본권 행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헌법상 보장된 권리행사에도 원칙적 자유와 예외적 금지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규제와 금지가 가로막고 있어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어 있다. 자유롭게 말하고 모여서 소리치고 싶어도 산성 같은 걸림돌들이 태클을 건다. 공직선거법에 산적한 규제들이 그렇다. 유권자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보지 않고 국가가 보호하고 다스려야 할 후견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투성이다.


선거는 후보자와 정당이 치르는 것이 아니다. 선거의 핵심 주체는 유권자다. 선거 기간에는 후보자들 사이뿐만 아니라 후보자와 유권자, 유권자와 유권자 사이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허용되고 소통의 길이 트여야 민주주의가 성숙한다. 선거 기간 내내 유권자를 들러리로 만들고 투표 당일에만 한 표 행사하는 데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행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주체와 방법, 시기에서 온갖 규제로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심히 제약하고 있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일부 확대됐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의 후보자 비방죄가 도사리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정책캠페인 단속 조항이 버티고 있어 유권자들의 말할 권리가 위축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정책토론이 보장되는 정책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유인물, 설치물, 서명운동과 같이 정책캠페인의 수단을 금지하는 독소조항은 폐지돼야 한다. 인터넷 선거운동이 허용됐음에도 선거운동 기간에만 실명제를 두어 유권자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우선 자기검열부터 해야 한다. 인터넷·SNS의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은 상시 허용돼야 하는데 선거법은 선거당일은 제외시켰다.


우리는 투표하고 싶다. 그러나 선거법상의 규제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유권자가 많다. 다행히 사전투표제도는 도입됐지만, 저녁 6시까지로 제한된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투표일을 유급휴일로 정하고, 사업주의 노동자 투표시간 보장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투표권 나이도 만 18세로 낮추어야 한다. 18세는 평생의 반려자인 배우자를 선택해 결혼할 수 있는 혼인적령이다. 그 성숙함으로 지역구 대표 정도는 능히 고를 수 있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좌우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공직선거법을 관권선거와 금권선거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온갖 규제는 물에 다 빠뜨려 살릴 것만 건져내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 선거법이 규제 덩어리이다 보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공정성이라는 미명하에 단속과 처벌 위주의 선거관리에 목매고 있다.


“반노동자 정당 투쟁으로 심판하자”는 현수막 문구가 여당의 명칭을 유추할 수 있다며 집회 장소에 게시하면 선거법 제90조 위반이라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불공정하고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다. 그에 반해서 친박 실세인 최 아무개 후보는 전관예우 발휘를 들먹이고 조 아무개 후보는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한다는 관권개입성 발언을 해도 선관위는 아무 말이 없다.


선관위는 유권자의 입과 손발을 묶어둘 것이 아니라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국가기관의 부당한 선거개입 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민의 왜곡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법치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유권자에게 올바르고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여 선거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높이려는 시민들의 활동은 권장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가기관을 제대로 감시해야 공정선거를 이룰 수 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312058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