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배병문 - 처음 투표장에 들어설 아들에게

irene777 2016. 4. 12. 01:03



[아침을 열며]


처음 투표장에 들어설 아들에게


- 경향신문  2016년 4월 10일 -





▲ 배병문

경향신문 대중문화부장



아들, 첫 투표라서 좀 떨리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할 거야. 아빠도 처음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투표를 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적지 않게 후회와 실망을 하곤 했어. 하지만 선거를 거듭하면서 진짜와 가짜를 감별해내는 눈이 생겨났고 예전과 같은 그런 큰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게 됐어. 그래서 처음 투표장에 들어설 네가 아빠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조언을 해줄까 해.


우선 투표하기 전에 기억을 잘 되살리는 일이 중요하단다. ‘지난여름 그들이 한 짓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선거는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어떤 정치를 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야. 그들이 국가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성적을 매기는 거지. 지난 3년 중 뭐가 기억나니. 2년 전 4월16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 300여명의 아이들과 국민들이 세월호 속에서 죽어갈 때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을 했지? 이뿐 아니라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건의 시작과 끝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어. 또 메르스란 질병도 생각나는구나. 후진국에도 퍼지지 않는 질병에 안일하게 대처하다 수십명이 어처구니없게도 목숨을 잃었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에는 어떤 진전이 있었니. 북한의 핵개발에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개성공단이라는 실낱같던 통일의 희망을 사라지게 했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야. 어디 이런 사례뿐이겠니. 그러니 그들이 내세웠던 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정말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됐는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향상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또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선거판에는 상대에 대한 비난과 비판, 심지어 마타도어(흑색선전)도 많아. 또 책임지지도 못할 약속까지 마구 내뱉는단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너희들 대학생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지만 “제가 언제 그랬나요”라는 듯 모른 척했지 않니. 이번 선거에도 시급 1만원 지급, 재개발, 전철 유치 등등 각종 약속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을 볼 수 있어. 게다가 선거철만 되면 이상하게도 북한관련 사건 기사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우리나라 선거만의 특징이야. 국정원 경찰 검찰 등은 시의적절(?)하게도 북한의 대남 도발위협과 간첩사건을 발표한단다. 진실 여부를 떠나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을 향한 이 같은 ‘안보장사’는 선거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해. 아들, 안보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어.


지역주의도 경계해야 돼.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내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표를 구걸하는 행태는 남아 있단다. 얼마 전 대구·경북 새누리당 후보들이 죽 늘어앉아 무릎을 꿇고 “박 대통령을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는 사진 봤지. 왜 국민의 대변자라는 의원들이 대통령을 왕처럼 모시는 걸까. 행정부의 정책을 견제하는 게 임무인 그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위해 표를 달라고 하는 이 기묘한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니. 이게 내 고향 사람에 대한 동정과 의리에 호소하는 지역주의라는 한국정치의 큰 병폐란다.


마지막으로 나와의 관계성을 끊어내야 한다. 선거는 국가의 공적인 일을 맡길 사람을 뽑는 거야. 국민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식견과 상식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선택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아. 거기에 국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갖췄다면 더욱 좋은 후보겠지. 하지만 한국만의 선택기준이 끼어들곤 해. 이를테면 같은 집안이나 친척, 같은 학교 선후배라는 혈연과 학연이 올바른 선택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해. 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택하기도 한단다. 같은 교회나 사찰을 다닌다는 이유로, 목사나 스님이 은근히 추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표를 던져버리는 거야. 어처구니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란다.


아들, 하지만 이 모든 기준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너 또래들은 투표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정치행위이며 한 사람 투표한다고 세상이 바뀌느냐는 말을 많이 하더구나. 그 말에 아빠는 이렇게 답하고 싶어. “투표해, 해봐, 세상이 바뀌게 된다”고. 행동하지 않는 울분은 아무 의미가 없어. 한번 생각해봐. 참여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가 그들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을까. 그러니 취업공부에 바빠서, 비정규직이어서라는 변명을 이젠 그만하고 모두 투표장으로 몰려갔으면 해. 아들도 친구들에게 투표하자고 문자 많이 보내주고, 첫 투표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사하길 바란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02055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