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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종규 - 고령사회의 부채, 미래세대의 부담

irene777 2016. 4. 15. 03:01



[경제와 세상]


고령사회의 부채, 미래세대의 부담


- 경향신문  2016년 4월 14일 -





▲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이번에도 총선은 흥미진진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면도 많았다. 3김시대 이후 정치는 더 이상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정치는 우리 국민에게 영원한 엔터테인먼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드라마 시청하듯 생각 없이 표를 던졌을 유권자는 없으리라고 본다. 앞으로 4년 동안 국가의 운명을 결정해 나갈 사람들을 뽑는 중차대한 행사였으니 말이다. 제20대 국회 임기(2016∼2020년) 중에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닥칠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고령사회 진입’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가 된다. 그 뒤 고령화는 점점 빨라져 2060년이면 열 사람 중 네 사람(전체의 40.1%)이 65세 이상, 두 사람(전체의 17.2%)이 80세 이상인 사회가 된다. 일반인들의 사고방식, 관습, 문화, 경제 및 정치 양상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 재정도 예외가 아니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35∼54세의 사람들이 2012년 대비 거의 절반(47%)이 사라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정이 장기적으로 무사하리라 믿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다.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도 2060년에는 100살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구태여 2060년의 상황을 심각하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2060년보다 훨씬 이전에 고령화로 인한 재정위기가 도래하며, 이를 방지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대비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2년에 발간한 ‘2012∼2060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34년 무렵부터 재정은 지속불가능 상태에 빠진다. 국가부채가 너무 많아져서가 아니라 노인인구 비율이 30%에 근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재정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페인식 재정위기다.


나는 솔직히 이 우울한 전망이 틀리기를 바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전망은 벌써부터 틀리기 시작했다. 긍정적이 아닌 부정적 방향으로 틀리기 시작한 게 문제다. 며칠 전에 나온 정부 결산은 2015년 국가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37.9%로 집계했다. 2012년 국회예산정책처 예상치인 GDP의 33.7%보다 많다. 3년 앞을 내다본 것이 4.2%포인트나 차이 나는 식이라면 재정의 지속불가능 도래 시점 또한 2034년에서 훨씬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재정건전화에 나선다면, 상황을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2034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의 절반(46%)에 달하는데, 그 정도로 고령화된 사회에서는 세입을 늘리고 세출을 줄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정부담도 미래세대에게 과도하게 집중된다. 말이 거창해서 ‘미래세대’지 지금의 36세 이하 청년층, 대학생, 중·고생, 초등학생, 유치원생, 갓난아기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말한다. 가뜩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할 이들이 성년이 되고 나서도 자신을 위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은 더 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기성세대, 특히 현재 나이가 50대 중반 이후인 사람들은 70대 중반의 고령이 되어, 부담을 짊어질 능력 자체가 없어진다. 재정 혜택만 누리고 부담은 다음 세대로 미뤄버린 ‘먹튀’가 되고 마는 것이다.


노후 준비는 노인이 되기 전에 마쳐야 하듯이 고령화 대비 또한 고령사회 진입 이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20대 국회는 ‘고령화 대비’라는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경기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단기적 역할은 모색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세입기반을 확충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놓아야 한다.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조정부담도 줄어들고 세대 간 부담도 공평해진다. 그렇게 해서 남긴 돈은 미래세대를 위해 국가부채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세입 증가를 약속한 정당들이 물론 있었지만 그 돈으로 지출 확대 공약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것이었지 국가부채를 줄이려는 용도는 아니었다.


아아! 해방 이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한 자랑스러운 기성세대들이 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시점에서 후손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원모심려와 자기절제의 결단을 내릴 수는 없겠는가? 20대 국회가 우리 사회의 중지를 모아 미래세대를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해주길 기원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40035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