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기도 “우리 잊지 말아요”
- 경향신문 2016년 4월 12일 -
세월호 추념전 ‘사월의 동행’…작가 22명의 시선과 얘기 담아
부패한 체제에 의해 저질러진 홀로코스트에 추모의 마음 모아
▲ 조소희, ‘봉선화 기도 304’, 2016, 혼합재료, 가변설치
세월호 참사 2주년. 아직 진상규명에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했고, 유족과 생존자들의 끔찍한 고통은 여전하다. 어린 학생들이 대다수인 304명 사망자를 제대로 애도하기는커녕,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과 변화의 기회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화 시 부패한 체제에 의해 저질러진 홀로코스트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경기도미술관이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4월16일~6월26일)을 마련했다.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있는 이 미술관 앞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다. 사건 직후부터 2년 동안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 시민들의 공감과 연민을 가까이 지켜본 셈이다. 이런 이유로 공립미술관으로는 처음 세월호를 기억하고 유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상심을 위로하기 위해 22명의 작가들이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해석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최정화 작가는 합동분향소 앞에 거대한 검은 연꽃을 설치한다. 천천히 오므렸다 펼치기를 반복하는 검은 연꽃은 애도와 부활의 상징이다. 그는 또 전시장에 로봇과 왕관을 설치했다. 일어나려고 애를 써도 일어나지 못하는 로봇, 은박지 위의 왕관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에서는 어딘가 어긋난 사회의 삐걱거림,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갑갑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조숙진 작가의 ‘천국의 얼굴’은 검은 패널에 304개 구멍을 뚫어 뒤에서 LED 조명을 비춤으로써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게 만든 작품이다. 조 작가는 “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어 세상을 비춘다고 믿었다. 죽은 이들을 들어올려 우리 사회를 비추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별자리를 연상시키는 작품에는 죽은 이들이 돌아간다는 북두칠성이 숨어 있다
조소희 작가의 ‘봉선화 기도 304’는 양쪽 가운뎃손가락에 봉선화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304명의 손을 찍은 사진을 작은 방의 사면 벽에 붙인다. 이를 위해 경기도미술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신청자를 받아 일일이 손가락을 물들인 뒤 사진촬영을 했다. 작업에 참여한 304개의 손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애도가 담긴 공동의 기도를 드러낸다. 33개월 아기부터 96세 할머니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 홍순명, ‘사소한 기념비’, 2015,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 가변설치
홍순명 작가의 ‘사소한 기념비’는 팽목항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랩으로 감싸고 그것을 그린 그림과 함께 설치한 작품이다. 홍 작가는 “사건이 일어난 몇 달 뒤 팽목항을 찾았는데 유족, 사복경찰, 추모객이 뒤섞여 이상한 분위기였다. 주변 해수욕장에 혼자 앉아 있다가 ‘너희는 지켜봤겠지’라는 마음으로 낚시도구, 부표, 노끈, 조개껍데기, 나뭇가지 등을 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후 세 번 더 현장을 찾아가 오브제를 주웠고, 이를 염하듯 감싼 뒤 제단화처럼 캔버스에 그렸다.
박은태 작가의 ‘기다리는 사람들’은 팽목항을 지켰던 유족들의 모습이자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나아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 박은태, ‘기다리는 사람들’, 2015, 캔버스에 아크릴, 187×454㎝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꿈과 상상, 현실의 파편들이 비현실적이고 공포스러운 붉은색 풍경에 녹아 있는데, 세월호 참사 역시 하나의 서사를 이루며 이 땅의 수려한 산천초목이 품은 슬픔과 고통을 보여준다.
장민승은 바쇼의 하이쿠 구절인 ‘둘이서 보았던 눈, 올해도 그렇게 내렸을까’에서 제목을 따온 밤바다 영상 ‘둘이서 보았던 눈’에서 평범한 바다의 풍경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의미가 아님을 전달한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많은 작가들이 이미 전시를 제안하기 이전부터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만큼 공동체의 참혹한 기억은 예술작품으로 승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또 “자칫 유족들에게 사건을 대상화함으로써 또 다른 상처를 줄까봐 미리 협의했다. 그들이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개막일인 16일에는 관람객들이 안규철 작가가 선정한 시 3편의 작가의 안내에 따라, 동시 낭독하는 관객 참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안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 “아름다움, 젊음과 우정, 인내와 슬픔과 고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관객들이 대신 읽어 오디오북으로 만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 프로젝트를 전시 기간 중 진행한다.
- 경향신문 한윤정 선임기자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2213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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