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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 아픔을 기록하는 사람들…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irene777 2016. 4. 19. 17:38



[세월호 2년-이제 나의 문제다 ①]

아픔을 기록하는 사람들…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 경향신문  2016년 4월 11일 -




아이들이 말했다 “함께 기억해주세요…안전과 존엄 보장받는 사회 위해”




▲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참사 직후부터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육성을 글로 기록해왔다. 

5일 작가기록단 중 유해정·고은채·박희정·명숙·미류·이호연·정주연·강곤 작가 (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작가기록단이 부각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다시, ‘아픈 4월’이다. 2014년 4월16일,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사망 295명·실종 9명)의 생명이 캄캄한 바닷속에 잠겼다. 세월호 참사 2년이 지났지만 진실규명은 제자리걸음이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애끊는 목소리는 정치적 시비 속에 잔인하게 폄훼됐다.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산·국회·청운동·광화문·팽목항 등지에서 세월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글로 기록해온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도 그중의 하나다. 작가기록단은 지난해 1월 단원고 희생학생의 부모 13명의 인터뷰집인<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출간했다. 최근엔 생존 학생 11명과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 15명을 인터뷰한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내놓았다. 이들을 지난 5일 만났다.



-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어떻게 구성됐나.


(유해정) “참사 직후 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가 구성됐다. 영상, 사진, 글로 기록하는 분들이 모였다. 글을 쓰는 작가기록단의 첫 회의는 2014년 6월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록할지, 누구의 목소리를 담을지 등을 논의했다. 유가족 목소리를 기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의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상실의 고통과 분노를 넘어 절망과 무기력 등 다양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의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곁을 지키며 같이 싸웠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들이 마음을 열었다. 첫 결과물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었다.”



-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


(정주연) “유가족의 마음을 얻는 과정은 진행상 고충일 뿐이었다. 정작 힘든 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힘들어서 못 읽고, 못 보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다. 피해자가 어떤 고통 속에 있는지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어떤 배경에서 기획했나.


(이호연) “10대에 참사를 겪은 생존 학생과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생존 학생들의 경우 배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 언론에 많이 시달린 탓에 다시 이야기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4·16인권실태조사단의 피해자 인터뷰 작업에 우리 중 일부가 참여했다. 우리의 생각을 설명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생존 학생 몇 명이 찾아왔고 이후 다른 친구들도 소개했다.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는 그들의 모임에 제안하고 세월호가족협의회에도 요청을 했다.”



- 생존 학생들이 언론 인터뷰는 거부하고 있다.


(강곤) “한 생존 학생은 두 번 만난 후 연락이 두절됐다. 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언론은 생존 학생들이 왜 이제야 입을 열었는지, 또 왜 나머지 대다수는 여전히 침묵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참사 직후 생존 학생들의 발언을 언론은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했다. 정치인은 고통과 모욕을 줬다. 사회 분위기는 ‘지겹다’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피해자 경험이나 고통을 공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고통을 떠올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 책 출간에 앞서 내용 일부가 웹툰으로 제작, 공개됐다. 생존 학생이 타인의 시선을 힘겨워하는 일상이 담겨 있다.


(유해정) “세월호 참사의 모든 피해자가 힘겹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에겐 ‘배·보상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하고, 생존 학생들에겐 ‘특례입학 수혜자이자 친구 놔두고 나온 아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구조활동에 나선 분들에겐 ‘네가 좀 더 구조했더라면’이라고도 했다. 이분들에겐 자신을 밝히는 것 자체가 모욕과 폭력을 감내하는 일이다. 생존자나 유가족이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을 온전한 한 개인으로 봐줄지 고민한다.”



- 형제·자매의 이야기는 많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기록 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은채) “언니를 잃은 한 학생은 인터뷰 첫날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울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다음날도 약속을 잡고 나왔다. 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구술하는지 궁금했다. 꿈에 언니가 나왔다며 꿈 내용을 글로 적어 왔다. 다른 친구들도 많이 그러는데, 꿈에 나온 형제·자매를 기억하려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말로는 다 전달하지 못하는 동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명숙) “희생된 형제·자매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자기 마음을 기록한 결과물이 훗날 자기를 반추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해 참여한 경우가 많다. 10대인 자신들이 겪은 게 무엇인지 세상에 말하고 싶어 했다.”



- 세월호 참사 전과 후, 그들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유해정) “‘세상에 대한 불신’이다. 이전엔 완벽하지는 않아도 사회적 정의가 있고, 정부가 어려운 이들을 보듬어 안을 것이며, 언론은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게 다 깨졌다. 국가는 정의롭지 않았고, 공권력은 폭력적이었으며, 언론은 왜곡보도로 일관했다. 사람들은 자식과 형제, 친구를 잃은 피해자들을 모욕했다. 참사를 겪은 후 꿈을 바꾼 친구들이 많다. 한 희생자의 언니는 죽은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삶의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명숙) “다들 불확실성도 말했다. 예전엔 계획도 세우고 ‘내일은 뭘 하지?’ 했다면 참사 이후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 생존 학생들의 경우 트라우마가 심할 것 같다.


(미류) “저마다 다르게 겪고 있어 일반화시키긴 어렵다. 몸에 새겨진 사건이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사건 자체의 강도가 트라우마 강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사건 이후 시간이 더 중요하다.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들어주는가,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노란 리본 하나를 더 달고, 생존자나 유가족을 만날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 인터뷰에 응한 10대들이 가장 말하고 싶어 한 건 무엇이었나.


(유해정) “‘함께 기억해달라’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모두의 바람이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은 단지 세월호 참사가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여전히 다수가 고통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는 게 아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함께 밝혀달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지 않고,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는 사회를 세월호를 계기로 함께 만들자는 것이다. 또한 10대들은 우리를 단지 '어린 피해자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 2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다. 시민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다.


(고은채)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자각은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절망만 준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함께 곁에 있는 것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관심이 줄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해결의 소망을 버린 것도, 남의 일로 여기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은 왜 중요한가.


(박희정) “어떤 고통이 사회적 기억이 된다는 건 관점과 해석이 있음을 의미한다.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건 진상규명과 연결되는데,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이분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엇을 빼앗겼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참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사가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실천을 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환기하는 것이다.”



- 경향신문  박주연 기자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02303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