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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병규 - 4·13 총선 시즌 2는 ‘희망의 정치’

irene777 2016. 4. 27. 02:37



[세상읽기]


4·13 총선 시즌 2는 ‘희망의 정치’


- 경향신문  2016년 4월 22일 -





▲ 백병규 

시사평론가



4·13 총선 결과를 지진으로 치면 그 강도가 얼마나 될까?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의 콘크리트 성채의 축대와 성벽이 붕괴됐다. 양당 체제라는 정치 지형의 얼개 또한 무너져 내렸다. 공고해 보였던 콘크리트 성채나 양당 체제라는 오래된 기틀이 대책 없이 무너진 것을 보면 일본 구마모토를 강타한 진도 7 정도는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의 모든 관측기기는 예측에 실패했다. 그 진앙은 표층 깊숙한 곳일 터다. 규모로 따지자면 8, 9 정도의 대지진이다. 부글부글 끓던 민심의 분출이라는 점에선 화산폭발에 더 가깝다.



4·13 총선 결과가 분노한 표심의 심판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심판이자 상식을 뒤엎고 시대를 역행한 퇴행적 행태에 대한 응징이었다. 더불어 무능하고 무력한 야당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했다. 기성의 정치 질서와 관성적인 정치 셈법에 대한 반란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심판당한 것은 비단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민심의 도저한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언론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한쪽은 야권 분열을 부추기고, 다른 한쪽은 야권 분열은 필패라며 목소리를 높여 왔던 것이 무색하게 됐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언론은 최소한의 자성도 없이 민심의 심판을 앞세우기 바쁘다. 염치없는 행태다.


선거 막판까지 분열된 야권 후보 단일화만이 살길이라며 야권을 압박했던 재야 민주화 원로들 역시 그 취지의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계면쩍게 됐다.


어쨌든 박근혜의 ‘진박프로젝트’는 좌절됐다. 김종인의 ‘집권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제3의 길을 선택한 안철수는? 대통령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20대 국회의 전반부는, 앞으로 대선까지의 1년8개월은 그 시즌2가 될 터이다.


분노한 민심은 일단 정치판을 흩트려 놓았다. 오만한 집권 여당을 혼쭐을 내주고, 야권에는 경고와 함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결과적으론 절묘한 균형이다. 그 어느 쪽도 독주는 불가능하게 됐다. 대화와 타협, 절충의 정치를 호출한 셈이다. 그리고 각자의 됨됨이와 실력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시즌 2의 전개는 이제부터 하기 나름이다.


가장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된 것은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다. 그것은 곧 집권의 기회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할 터. 제1당으로서의 리더십과 실력이 곧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그 1차적인 관건은 김종인 집권프로젝트의 지속 여부다. 아니라면 그것을 대체할 당내 차기 리더십과 집권 플랜을 어떻게 질서 있게, 전망 있게 구축할지가 과제다. 거칠게 불거지고 유치하게 전개된 김종인 차기 당대표 추대 논란을 보면 과연 집권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말 그대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국민의당은 대안정당으로서의 가능성과 제3당으로서의 정치적 위상과 노선 정립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호남당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제1당을 능가한 전국적인 정당 득표는 대안 정치세력에 대한 민심의 열망이 표출된 것임에 분명하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그런 민심에 호응할 수 있을지 여부 또한 곧 그 행보를 통해서 확인될 터이다.


아수라장이 된 새누리당의 재편은 한국 정치의 질적 쇄신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기득권 보수정당이 어떻게 서느냐가 한국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기존의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공천 과정에서의 막장 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주를 전혀 저지하지 못하고, 국민 다수의 행복보다는 기득권의 이해만 대변한 결과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정당으로서는 전망이 없다.


며칠 전 대화를 나눈 50대 후반의 한 택시기사는 이번에 선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투표하지 않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강변했다. 지난 대선 이후 투표를 하지 않기로 작심했고, 앞으로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대통령처럼 자전거 타고 출근하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때 투표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4·13 총선이 분노의 표심이 표출된 것이라면 그 시즌 2는 누가, 어떤 당이 진정 정치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는지 모른다. 분노의 표심에 희망의 정치로 답할 때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222049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