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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경집 - 다시 시작이다!

irene777 2016. 4. 27. 18:42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


다시 시작이다!


- 경향신문  2015년 4월 21일 -





▲ 김경집  

인문학자



지난 토요일 양평의 한 학교에 다녀왔다. 그날은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재작년 그 날의 충격과 분노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물에 잠긴 아이들이 남았다. 그래놓고 우리는 태연히 산다. 국가는 해야 할 일을 외면했다. 유가족을 조롱했다. 심지어 그들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다고 타박했다. 지금도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에 먼저 도착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보기 좋았다. 그러나 250명의 학생들이 차갑게 죽어갔다. 태극기가 바람에 날렸다. 조기가 아니었다. 조기로 달았어야 했다. 학생들이 죽어간 날이 아닌가. 학교는 학생들의 집이다. 교육부는 세월호에 대한 교육도 못하게 막는다. 더러운 이념의 굴레만 씌우려 한다. 치졸하다. 그러니 어떤 학교가 조기를 감히 달겠는가. 참 파렴치하게 산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시민들은 분노했다. 표로 응징했다. 여당의 충격적 참패라고 떠든다. 아니다. 그 정도면 선방한 것이다. 야권표가 갈린 덕도 크게 봤다. 지난 3년간 정부와 여당이 한 게 뭐가 있는가. 경제는 암흑으로 치닫는다. 양극화는 극심하다. 민주주의는 유린되었다. 사회안전망은 전혀 없다. 남북관계는 엉망이다. 외교는 무능하다. 세월호,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가계와 국가부채 급증, 청년실업의 극심, 언론과 인권의 유린, 국가경쟁력의 후퇴, 국민화합의 외면, 불통과 일방통행, 검열과 감시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제대로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오만과 탐욕만 난무했다. 그런 여당과 대통령은 야당을 심판해달라고 겁박했다. 안하무인이고 후안무치의 극치다. 그러니 이 정도 의석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선거 기간 극히 짧은 덕도 봤다. 성공한 선거 결과다.


어쨌거나 여당은 과반 획득에 실패했다. 그 결과는 금세 나타났다. 작년 세월호 집회 때 경찰은 어땠는가? 폭도 진압하듯 했다. 유가족도 질질 끌고 갔다. 차벽과 물대포를 앞세웠다. 그러면서 경찰 수장은 정당하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그도 꼬리를 내렸다. 만약 무능하고 반민주적인 여당이 또 승리했다면 그랬을까? 올해는 경찰이 세월호 집회 참석자들을 밖에서 지켜만 봤다. 그럼 작년의 모습은 뭔가? 최소한 그 설명은 했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다. 하지만 그런 말도 없었다. 힘의 향배와 시민의 분노가 두려웠을 뿐이다. 이런 변화는 선거의 결실이다. 그래서 더 얄밉고 괘씸하다.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아서 고마운 게 아니다. 그건 당연한 권리다. 그걸 불법으로 몰고 진압한 일부터 사과해야 옳다. 우리의 표가 뻔뻔한 권력을 눌렀다.


지금의 정권은 보수의 가치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보수도 아니었다. 그들이 나라와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따지고 비판하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아무 일 없는 것으로 눙쳤다. 그게 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반민주 반민생 비교육을 응징했다. 하지만 안도할 때가 아니다. 악의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탐욕의 야만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독버섯은 다시 창궐한다. 건강한 보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무능하되 교묘한 수구가 보수의 탈을 쓴다. 그들에게 다시 권력을 빼앗기면 앞으로 10년 후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가진다.





이미 국내 최고의 기업은 1만명 넘게 감원했다. 미래 투자는 하지 않는다. 쌓인 돈은 움켜쥐고만 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협박한다. 선거 패배 후 대통령은 여전히 노동개혁을 요구한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 해도 막무가내다. 이러다 다 죽는다. 무능력한 두 정부는 400조원이 넘는 국가부채만 키웠다. 대신 실업자 400만명을 키웠다. 결실은 없다. 돈은 애먼 데로 다 샜다. 진박 타령의 중심이었던 인물이 경제부총리로 있으면서 100조원이 넘는 돈을 퍼부었다. 경기회복 핑계만 댔다.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전·월세로 고통받는 이들만 늘었을 뿐이다. 요즘 TV에서 먹방 다음 ‘집방’으로 가는 걸 주목한다. 예전엔 큰 집의 멋진 인테리어를 보여줬다. 나도 돈 벌면 그런 집을 마련하는 꿈을 꿨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원천봉쇄다. ‘집방’의 대상은 옥탑방, 반지하방이다. 거기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헛된 꿈 꾸지 말란다. 지금 있는 방이나 꾸며서 거기 안주하라는 거다. 그게 일반화되었다는 방증이다. 이러고 어찌 미래를 꿈꾸는가.


20세기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는 빠른 결정과 힘의 집중을 강조했다. 독재는 그렇게 합리화되었다. 작은 지분으로 소유권을 행사하는 재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직도 그 미련에 빠져있다. 박정희에 대한 미련은 그런 사고의 유산이다. 현재 대통령의 문제와 대한민국의 불운은 그 유산 위에 있다. 미래가치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런데 대통령은 여전히 오불관언이다. 자기가 망친 선거판이다. 하지만 사과도 책임도 없단다. 아마 승리했으면 기고만장하고 자기 덕이라 했을 것이다. 여당의원들은 대통령 눈치만 보며 거수기 노릇을 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했다. 물론 거수기 노릇만 했을까? 뒤로 다 제 잇속 찾아먹으니 그랬을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억누르면 안 된다. 그건 미래를 죽이는 거다. 슬퍼할 건 슬퍼해야 한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래야 풀린다. 그렇게 당당하게 표출하며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억누른다. 슬픔도 금지시킨다. 투표권도 없으니 그들은 무력하다. 그래서 형 언니들에게 제발 투표해달라고 대자보도 걸었다. 이번 선거는 분노조차 억압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저항이다. 억누르지 않았으면 제 손으로 학교에 조기를 걸었을 것이다. 청소년들조차 순치한다. 제발 더 이상 교묘한 야만을 버리자. 아이들이 당당하게 슬퍼하고 조기를 걸게 하자. 그게 미래의 힘이 된다. 우리가 표로 응징한 건 바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지난 10년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했다. 21세기다. 앞으로 10년은 정말 중요하다. 회복이냐 추락이냐가 결정된다. 민주주의와 정의는 정권의 입맛에 달린 게 아니다. 수평사회로 가지 않으면 멸망한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 바탕이다. 그게 21세기의 명제다. 시대정신과 미래의제를 성찰해야 한다. 그게 이번 선거가 던진 숙제다.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대한민국호가 침몰한다. 벼랑 위에 있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도 건지고 대한민국호도 순항시켜야 한다. 껍데기는 가라! 강물은 다시 도도히 흘러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21204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