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잘못 ‘남 탓’이면 국정책임에서 물러나야
세월호 진상규명이 진정한 민생․법치의 출발
<정상모의 흥망성쇠>
- 미디어오늘 2014년 9월 11일 -
진실 은폐는 의혹을 확대재생산한다. 진실을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유언비어가 창궐하게 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요 유언비어의 법칙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그 단적인 예다. 청와대의 답답한 ‘찔끔 찔끔 공개’로 의혹만 불어나지 않았는가.
의혹은 조선일보 칼럼으로, 다시 이 칼럼을 근거로 한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로 외교문제, 소송전으로 마치 눈덩이처럼 번져나갔다. 급기야 전 세계 언론인들의 비정부기구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성명으로 한국 정부에게 한국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산케이신문의 서울 지국장을 기소하지 말라고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성명 내용은 “언론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가의 행동에 대한 시시비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로 국가적인 비극에서 대통령의 일정이 애매하다는 것은 분명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성명은 또 문제의 산케이신문 보도가 근거로 삼은 조선일보는 왜 한국 정부의 고발 대상이 되지 않았는지, 한국 정부의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이래저래 국제적인 망신 아닌가.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원인, 수습 과정, 유병언 회장의 수사 등과 관련해서도 온갖 의혹과 유언비어들이 난무하지 않았는가. 이런 의혹과 유언비어들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불신의 요인들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신뢰와 결속의 기반이 훼손되고 말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을 경우, 온갖 음습한 유착과 비리 속에서 국민들이 언제 무슨 일과 사고로 생명을 잃게 될지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문제의 해결방법이나 재발 방지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아 병명이나 병의 원인도 모르면서 수술이나 치료를 하겠다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더 있겠는가.
▲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가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3보 1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없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죽음의 미래’일 수밖에 없다.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박근혜 정부와 집권 여당으로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철저한 진상 규명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마땅하다.
세월호 참사 146일째를 맞는 추석날에도 유가족들은 단식농성을 하며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정부와 여당이 진정한 진상 규명의 책임과 의무를 외면한 자신들의 탓은 생각지 않고 이들의 호소를 매정하게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박 대통령은 300여명의 자식들이 억울하게 수장당한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에게는 추석 덕담 한 마디도 없이 “나라 경제와 국민 여러분의 행복”의 소원을 거론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민생은 외치면서 세월호의 생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민생 법안들을 내세우며 ‘민생 경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민생 경제를 제대로 챙긴 적이 있는가. 민생을 위한 경제 민주화나 복지국가 공약을 대선이 끝나자마자 헌신짝처럼 팽개쳐놓고는 세월호 특별법 상황이 되니까 ‘민생 경제 마케팅 쇼’인가.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며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OECD 기준의 중산층 중 55%가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한국의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재촉하는 ‘민생 법안’ 중에는 재벌과 대기업, 부유층을 위한 법률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생의 핵심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인간의 기본권 보장이다. 기본권의 으뜸인 생명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쳐놓고 무슨 민생 타령인가.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에 법치주의니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 따위를 거론하며 반대하지만, 한마디로 핑계에 불과하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세월호 유족과의 회동에서 “정부와 여당을 막 조사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데서 드러난 대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을 조사 대상에서 빼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속내가 반대 이유의 실체 아니겠는가.
법치주의의 본질은 정치권력이 법의 근거와 절차에 따라 제약을 받는 국가체제로서 입법자나 최고통치권자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 대통령이든 국정원이든 법의 지배에서 결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조사 사례를 보자.
2002년 11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9·11 테러 국가위원회’는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국방장관 등 정부의 핵심인사들을 모두 증언대에 세워 고강도 조사를 했다. 조사의 핵심 쟁점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테러 사건 발생 한 달여 전 정보당국이 알카에다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한 비밀문서를 토대로 사전 대응을 제대로 했느냐 여부였다.
왜 한국의 대통령과 국정원 등은 진상 규명의 대상에서 빠지려고 하는가. 이야말로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훼손하려는 행태 아닌가.
정부와 여당은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놓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거론하며 사법체계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지만 이것도 틀린 주장이다. 유가족들이 직접 형벌권을 행사하겠다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등 정부기관의 책임을 수사할 때 정부쪽 특별검사가 수사하는 게 오히려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 위반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에 청와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난 5월 철저한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안 등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는가. 정부와 여당이 억지와 궤변, 기만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진상 규명을 회피하려는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김밥과 피자를 먹는 ‘폭식투쟁’으로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행위는 야만과 패륜의 행태다. 이들의 행위는 고락을 함께 하는 전통적 윤리의 공동체 기반, 나아가 국가 안보의 기반마저 파괴하는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태다.
이런 일베의 극단적 일탈에도 침묵하는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은 이들을 암묵적 지원, 고무, 옹호하는 것인가. 자기들 진영의 입장이라면 야만과 패륜의 일탈도 괜찮다는 파쇼 논리인가. 최소한의 공동체 윤리도 애정도 없는 사회와 국가라면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애국심과 사명감이 나올 리 있겠는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야말로 생명권 등 기본권과 민생, 이를 위한 법치의 출발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해야 할 1차적 책임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진상 규명도 제대로 못할 만큼 진실이 실종된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여당이 경제와 민생 등의 모든 잘못을 오로지 ‘남 탓’으로만 돌리는 무책임한 행태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면, 차라리 국정의 책임에서 물러나야 한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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