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시선]
이 사사로운 불행
- 경향신문 2016년 5월 12일 -
▲ 최태섭
‘잉여사회’ 저자
한국사회의 모든 피해자들은 유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한국사회에서 피해를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악순환을 발생시킨다. 피해자들을 모욕하면서 그들의 상처를 헤집어놓은 까닭에 피해자들은 이미 겪은 사건의 상처에 더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한다.
아무리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터져 나오는 피해자들의 이상행동을 두고 사회는 그들이 원래부터 이상하고, 사실상 피해를 당할 만했으며, 피해를 빌미 삼아 사회에 기생하려는 파렴치한 존재였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이렇게 피해자를 괴물로 만들어 놓고 사회는 그들에게 발생한 불행이란 결국 그들 자신의 것이었으니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손을 씻는다. 즉 피해자를 모욕하고, 괴물로 만들고, 그들에게 발생한 불행을 사사로운 것으로 만드는 게 오늘날 한국사회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어쩌면 사형제도보다도 훨씬 더 잔혹한 이 과정에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침묵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공갈협박 효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불행을 입에 담지 말고, 불행을 피하고, 오로지 안전하게 초원 한가운데를 거니는 양떼의 무리에 끼어 있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종종 피해자 본인보다도 더 비대해진 피해의식을 갖게 된 ‘잠재적 피해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무균실로 만들고 싶어 한다. 불행의 작은 씨앗이라도 달라붙을까 전전긍긍하며, 국가를 상대로 ‘안전’과 ‘더 큰 권력’을 기꺼이 맞바꾸려고 한다.
불행을 피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들은 점점 강박적 조치로, 결벽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합리적 세계를 만들라는 합리적 요구는 점점 증폭되어, ‘무통’한 사회에 대한 요구로 바뀐다. 고통도, 트라우마도, 불행도 없이 오직 평온과 안락만을 제공하는 어떤 세계 말이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도 모든 불운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되레 점점 늘어나는 위협요인들의 목록을 보며 왜 간편하게 자살을 택하면 안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불행을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몰아내려는 모든 호들갑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 호들갑의 효과는 뒤따라올 좌절보다도 더 큰 것이다. 우리가 강박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세계관은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설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을 지금 맞이한 불행과 다가올 불행에 의해 규정된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만남이 아니라 폐절과 고립으로 이끈다. 작은 상처에도 쉽게 굴복하고, 새로운 것과 다른 것을 피하게 한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가능성들은 질식한다. 결국 그 어떤 피해자도, 또 예비적 피해자도 구제하지 못한 채 사고사와 폐사만이 유일한 미래로 주어진다.
물론 예비할 수 있었거나, 막을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까지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숙명적인 불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행을 우리 삶과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창문으로도 날아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불행을 맞아들인 이웃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혹여 나에게도 날아들지 모르는 불행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22055035>
'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더민주 운동권은 열린우리당 운동권과 어떻게 다른가? (0) | 2016.05.16 |
---|---|
<칼럼> 김경집 - 닭의 시대 (0) | 2016.05.16 |
<칼럼> 김준형 - 아직도 무섭다 (0) | 2016.05.16 |
<칼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정부책임도 크다” (0) | 2016.05.15 |
<칼럼> 요즈음 언론들... 왜 이러세요? (0) | 2016.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