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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상훈 - 저 病的 오기가 총선 이어 대선도 엎을 것

irene777 2016. 5. 28. 20:56



[양상훈 칼럼]


저 病的 오기가 총선 이어 대선도 엎을 것


- 조선일보  2016년 5월 19일 -





▲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선거 책임 정무수석 기세등등… 소외됐던 비서실장만 사퇴 

여당엔 '시키는 대로 하라', 비박엔 '나갈 테면 나가라' 

사망선고 받은 권력이 선거 이긴 듯이 高자세


이번 총선 여당 참패는 영어로는 랜드슬라이드(landslide)라고 한다. 산사태처럼 무너졌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질색하는 것은 권력자, 가진 자의 오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 의원들을 다 잘라내려는 오만을 부리지 않았다면 공천 분란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다.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오기와 아집이 명백히 예견된 대승을 기록적 대패로 바꿔놓았다.


선거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 투표장에 가지 않았거나 다른 당을 찍은 여당 지지자들은 속 시원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했나'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이런 걱정이 모이면 다음 선거에선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것이 민주국가에서 이어지는 승패 교대의 선거 역사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산사태가 제대로 나야 한다. 쏟아질 흙더미는 다 쏟아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흙더미가 산 위에 남아 있으면 다음 선거에서 또 쏟아진다. 지금 박 대통령과 친박은 쏟아지는 흙더미까지 막겠다며 버티고 서 있다.


여당 원로 한 분의 말이다. "민심이 거부해 선거에서 진 측은 네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을 바로 인정해야 한다. 둘째 그 패배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걸 함께 인정해야 한다. 셋째 잘못된 부분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넷째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가 카타르시스가 되고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선거 패배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단 한마디도, 형식적으로라도 하지 않고 있다. 그 패배가 자신이 아닌 비박과 언론 탓이라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반성이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원상회복해야 할 것도 없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이유도 없다. 정작 선거에 책임이 있는 정무수석은 기세등등 그대로 있고, 정무수석에게 밀려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비서실장만 물러났다.


요즘 박 대통령 주변에선 새누리당을 우습게 보고 속된 말로 '까불지 말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한다. 야당과 하는 법안 협상이든 여당 내 혁신위 구성이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게 아주 노골적이라고 한다. 타협 정치니 하는 것은 겉으로 하는 얘기고 속으로는 여전히 미운 놈 응징이 우선이다. 유승민 복당시킬까 봐 이제 겨우 몸을 추스르려는 새누리당을 파탄내버린다. 비박에 대해선 '나가지도 못할 테지만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고자세는 친박 권력의 자폐(自閉)적 속성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이 40년 가까이 세상과 사실상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은 생각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것 같다. 그를 보스로 모시면서 '배신'과 '의리'만 따져온 친박 그룹 역시 심각한 폐쇄성을 보이고 있다.


자폐적 권력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은 언제나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언론과 만나 비박에 대해 "자기 정치 한다고 대통령을 힘들게 하고, 하나도 도와주지는 않고…"라고 했다. 세종시 문제 때 박근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딱 그렇게 했지만 자폐증 권력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 위치는 어디쯤인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유별나게 부족하다면 그것은 병(病)이다. 생각과 행동이 사회의 상식과 일반의 예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다 혀를 차도 자기들끼리는 '잘했다'면서 좋아한다.


이번 총선으로 친박은 정치적으로 죽었다. 부산, 서울 강남, 분당이 여당을 거부했으면 거의 탄핵이고 사망선고다. 죽을 때 확실히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는 게 정치다. 그런데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박 대통령과 친박이 새누리당 시신 위에 올라타고 또 '이래라저래라' 하고 호통치고 뒤집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박 대통령이 탈당하면 계파 싸움이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하지만, 당을 자기 것으로 알기 때문에 탈당도 하지 않을 것이다.


죽었는데도 돌아다니는 게 좀비다. 사망 원인이 자폐증인 권력이 좀비까지 돼 세상과 동떨어진 행동을 계속하면 새누리당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불행해진다. 좀비는 맹목적으로 돌격한다. 국민과 국정(國政)보다는 반격을 꿈꾼다. 복수 대상은 안팎의 적(敵)이다. 안팎의 적을 다 모으면 그게 국민이란 건 좀비 눈엔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음 대통령 만들기는 일거에 뒤집는 복수가 될 수 있다. 자폐 권력은 '남들은 못 했어도 나는 된다'고 확신한다. 그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고 작전 계획도 수립 중일 것이다. 그러다가 질 수 없는 총선을 졌고, 다음엔 대선까지 망칠 것이다. 산사태와 같은 총선 심판에도 자폐 권력이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있으니 대선 때 제2차 산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면 박 대통령과 친박이 막고 있는 흙더미가 마저 쏟아져 내려 다 쓸고 갈 것이다.



-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18/2016051803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