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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대엽 - 면피형 협치와 혁신형 협치

irene777 2016. 6. 18. 23:17



[정동칼럼]


면피형 협치와 혁신형 협치


- 경향신문  2016년 6월 17일 -





▲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학)



뭔가 이상하고 잘 와 닿지 않는다. 요즘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협치’ 이야기다. 지난 4월 총선결과 국회가 3당 체제가 되고 야당이 제1당이 되면서 정당 간 협조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협치’라는 말을 쓴 것으로 짐작된다. 괜찮은 표현이라 여긴 건지 야당도 덩달아 쓴다. ‘협치’라는 말은 사회과학에서는 새로운 공공관리 시스템을 뜻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된 개념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유행어가 된 ‘협치’는 이같은 거버넌스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고 단순히 여야 간의 협조쯤으로 이해된다. 이미 특정한 의미로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협치’라는 개념을 왜 굳이 정당 간 협조나 정치적 타협의 의미로 갖다 붙이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이 개념을 학습한 사람들에게는 정치인들이 쓰는 이 말이 와 닿지 않고 뭔가 강요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협치라는 말을 사용하는 정치인 누구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슨 말인지 알고나 쓰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17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가 ‘협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 교수의 요점은, 우선 협치라는 개념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여야의 협치를 강조함으로써 국정 실패의 책임을 야당과 나누려는 불순한 의도가 의심된다는 점이며, 셋째는 여당의 국정 실패 책임을 묻는 총선의 민의를 오히려 여야가 타협정치 하라는 것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합리적 의심이고 타당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정치권, 특히 여당과 대통령이 자주 쓰는 협치라는 말은 총선 패배로 드러난 국정심판의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면피형’ 협치인 셈이다. 20대 국회 원 구성이 법정기한을 넘기자 언론은 “실종된 협치” “협치는 없고 대치만” “협치를 걷어차다” 라고 앞다투어 머리글을 달았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면피형 협치의 프레임에 어느새 언론도 한 무리가 된 듯했다. 아니면 애초에 특정 언론이 이 면피형 협치의 프레임을 주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따져볼 대목이다.


지난 20년 이상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했던 ‘거버넌스’로서의 ‘협치’ 개념을 잠시 떠올려 보자. 거버넌스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새로운 공공관리방식으로 주목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지구화, 시장화, 분권화, 네트워크화 등의 지구적 거대 경향에 따라 정부의 행정체계가 민간기업, 시민사회의 행위자와 함께 협력적으로 재구성되는 현상을 지칭한 데 따른 것이다.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 시장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뉴거버넌스, 굿거버넌스라고 부르는 ‘협치’는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적 제도를 개방적이고 참여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미래정치의 새로운 비전으로 주목될 수 있다.


여기서 협치는 공적 질서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재구성이라는 제도의 혁신을 함의한다. 말하자면 굿거버넌스로서의 협치는 기존의 질서를 바꾼다는 점에서 혁신성을 내재한 ‘혁신형’ 협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치권에 느닷없이 번진 면피형 협치와는 다르다.


한국에서 혁신형 협치의 실험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학계에서도 통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다양한 위원회에 적용하여 과감하게 협치를 실험한 것이다. 비록 실험적 수준에 머물렀지만 공적 제도의 참여 민주적 재구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이후 혁신형 협치의 씨앗은 지역에 뿌려졌고, 오늘날 혁신적 지자체에서 협치의 실험은 실제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 혁신적 협치의 선두에 있다.


혁신형 협치의 핵심은 ‘협력’의 질서다. 협치하는 것은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익과 욕망으로 갈라지고 해체된 우리 시대에 협력적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혁신적 지자체가 묵묵히 시대에 응답하고 있다. 이제 정치권이 응답하라.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면피용 정치언어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실질적 협치를 해야 한다. 혁신형 협치는 여의도를 에워싼 정치의 벽을 의원들 스스로가 허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내일의 권력>이라는 저서에서 “여의도의 정치독점은 여의도 바깥 정치 배제의 다른 말이다. 여의도보다 여의도 바깥이 훨씬 넓은 세계다. 그 세계가 사회다. 여의도 정치는 사회를 배제했고 배제당한 사회는 여의도 정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귀 기울일 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6205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