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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민 - 박 대통령의 잘못된 효도

irene777 2016. 6. 19. 01:27



[서민의 어쩌면]


박 대통령의 잘못된 효도


- 경향신문  2016년 6월 14일 -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2002년 말, 돌아가신 아버지의 첫 제사를 지냈다. 가족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얕아져서, 작년 제사 때는 아무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것을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한 결과이리라.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보이는 효심은 놀랍기 그지없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통)이 돌아가신 게 1979년이니 벌써 37년이 지났건만, 어떻게 된 게 시간이 감에 따라 효심이 더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


2012년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박 대통령이 여당 당대표이자 유력 대선후보가 아니었다면 서울에 기념관이 들어서는 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대통령이 된 박 대통령은 교과서를 뜯어고쳤다. 친일과 쿠데타 등등 박통의 부정적인 측면이 그대로 기술된 교과서가 아이들의 혼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논리였다. 요즘 대통령은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들에 새마을운동을 퍼뜨리려 노력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겠지만, 황폐해진 지금 농촌의 모습을 보면 그 운동의 성공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구촌 새마을운동’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심지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새마을운동을 게임으로 개발해 그 정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데, 박 대통령의 엄청난 효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왜 효도를 자기 돈으로 하지 국민 세금으로 하느냐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알아서 효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금 하는 것들이 진짜 효도인지 여부다. 나카자카 도니가 쓴 <도이옹도화>라는 책을 보면 효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우미에 사는 한 효자(이하 오우미)는 평소 자신이 더 효도를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시나노라는 곳에 엄청난 효자(이하 시나노)가 산다는 소문을 듣는다. 오우미는 제대로 된 효도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시나노의 집을 찾아간다. 잠시 후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시나노가 땔감을 잔뜩 진 채 집으로 왔다. 그런데 시나노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오자마자 큰 소리로 나이든 어머니를 불러 이렇게 외쳤다. “빨리와서 땔감 부리는 걸 도와줘요!”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곤하다며 노모더러 팔과 다리를 주무르게 했고, 어머니한테 밥상을 차리게 하더니 ‘반찬이 짜다’ ‘밥이 너무 딱딱하다’ 등등 밥투정을 해댔다. 보다 못한 오우미는 분연히 일어나 시나노를 나무랐다. “네가 효자라고 해서 배우러 왔더니, 너야말로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어찌 어머니를 그렇게 막 대하는가?”


그 말을 들은 시나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효도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효도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은 참된 효도가 아니다.”


무슨 말일까? 시나노의 어머니는 나무를 하고 온 아들이 피곤할 것 같아 돌봐주고 싶었을 텐데, 시나노는 그 마음을 헤아려 어머니더러 팔다리를 주무르게 한 거였다. 밥투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손님 대접을 하면서 혹시 미흡한 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 뜻을 헤아려 먼저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시나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대로 하게 하는 것뿐이네.”


박 대통령도 아버지 박통이 과연 이런 효도를 원했을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친일전력, 좌익전력, 독재를 통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 것, 권력을 이용해 뭇 여자를 섭렵한 일 등은 박통도 그리 떳떳하게 생각지 않았을 테니, 세금을 들여서라도 교과서를 고치는 건 효도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밖의 점들은 아버지가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박통이 경제발전에 매진한 것은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다는 사실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굶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 박통으로서는 재벌들을 배부르게 하느라 빈부격차가 나날이 커지게 만드는 딸을 보는 심정이 착잡할 것 같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소위 노동개혁법을 박통이라면 뜯어말리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발전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느라 외채로 고민했던 박통은 우리나라가 2016년 기준 1285조원의 빚을 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리라. 마지막으로 박통은 자신의 딸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욕먹는 일만 골라서 해대는 대통령을 박통이 봤다면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 같다. “내가 딸을 잘못 키웠구나.”


사정이 이럴진대 박 대통령이 효자 코스프레를 계속하는 것은 아버지를 위한다기보단 남에게 보이기 위한 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부디 대통령이 <도이옹도화>를 읽고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한다. 아버지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국민을 생각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4205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