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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상훈 - 의원 특권 다 버린 黨이 대선 이긴다

irene777 2016. 6. 19. 02:02



[양상훈 칼럼]


의원 특권 다 버린 黨이 대선 이긴다 


- 조선일보  2016년 6월 16일 -





▲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



제도·규모 다르다 해도 덴마크 정치보다 우리 정치가 무얼 잘해서 이토록 많은 걸 누리나

유·무형 의원 특권 다 없애면 국민이 놀라 다시 볼 것


서울 여의도와 강북을 연결하는 서강대교가 공무원들 사이에 '개×× 다리'로 불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국회에서 모욕당한 공무원들이 돌아가는 다리 위에서 저마다 "개××들"이라고 내뱉는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의원들 앞에서 곤욕을 치르지 않으려면 아무리 말 안 되는 소리에도 무조건 "예, 예" 하면서 "의원님의 고견을 적극 반영토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야 한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는 곤죽이 된다.


나라보다 정파(政派), 전체보다 자기 개인을 앞세우며 품위·예의와도 담을 쌓은 한국 의원들은 다음과 같이 살고 있다. 연봉은 1억4000만원 정도인데 이건 일부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 인턴 2명의 연 인건비가 4억5000만원 정도다. 이 비서진이 정말 무얼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45평 사무실 운영과 차량, 정책 자료 지원 경비가 1년에 9000만원이 넘는다. 연 450만원까지 항공·철도 요금을 지원받는다. 상임위원장은 매월 1000만원이 따로 나온다. 여기에 후원금을 1억5000만원까지 모아 쓸 수 있는데 선거 해엔 3억원으로 늘어난다. 때마다 개인 얘기 등을 적은 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돈을 받는다.


시찰 명목의 해외여행도 국민 세금으로 간다. 공항 귀빈 주차장에 내려서 귀빈 전용 통로로 가서 귀빈실에 앉아 항공사 접대를 받는다. 출입국 절차와 보안 심사는 사실상 생략이나 마찬가지다. 외국 공항에 내리면 현지 대사관에서 나와 극진히 모신다.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부분이 있으면 난리다. 이런 의전에 유독 민감하다.


지난달 각 당 초선 당선자 합동 연찬회에서 초선들은 300m를 버스 6대로 이동했고, 카펫 깔린 출입문으로 들어와 불과 한 층을 올라가느라 엘리베이터 3대를 독점했다. 일반인은 본청 정문 옆에 딸린 작은 회전문으로만 다녀야 한다. 의원은 예비군 훈련, 민방위 훈련 모두 면제다. 불체포특권·면책특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구속됐을 때도 수당이 지급된다. 시간 늦었다고 경찰을 동원해 막혀 있는 지방 국도를 역주행한 의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KBS가 선진국 중에서도 국민 행복도 1위라는 덴마크의 정치를 잠깐 소개했다. 의원 3분의 1이 자전거를 타고 등원했다. 자전거엔 짐칸, 아이 태우는 칸 등이 붙어 있다. 다른 의원들은 소형차를 직접 몰고 왔다. 의원 2명이 작은 사무실과 비서 한 명을 공동으로 썼다. 좀 큰 당대표실은 의원들 손님 응접실로도 쓰였다.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는 의원들 가방 안엔 야근용 속옷이 들어 있었다. 의사당 밖에서 초등학생들 집회가 열렸는데 지나가던 총리가 즉흥 연설을 한다. 총리는 거기 있던 한국 방송 카메라 앞에서 즉석 인터뷰도 했다. 상임위원회 사무실에 위원장 자리도 따로 없다. 다 섞여 앉는다. 이렇게 일하고 기본급은 800만~9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다른 특권은 상상할 수 없다.


한 전직 총리는 방 2개짜리 근로자용 임대아파트에서 47년을 살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부인이 그 아파트 건물 현관을 쓸고 닦았다. 부인 사후에 건강이 나빠졌지만 전 총리는 3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식료품을 샀다. 재산도 없고 있어도 다 기부했다. 그가 죽어 부인 옆에 묻혔는데 무덤 위치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어떤 사람이 길가에 아무것도 없이 꽃 하나 놓인 무덤을 겨우 찾아 "아마 여기일 것"이라고 했다.


작은 나라이고 내각제 국가인 덴마크의 제도를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을 전제하고 우리나라 의원이 누리는 것을 덴마크 수준으로 낮추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해 본다. 국회가 지금보다 못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이 일만 많고 누릴 것은 없게 되면 당장 의원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국회가 권력자들의 쟁투장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모임이 되면 그 분위기가 '죽기 살기'보다는 '양보와 타협'으로 흐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덴마크 의회엔 정당이 10곳 안팎 있지만, 합의 통과되지 않는 법안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한 정치인과 대화하는 중에 "다음 대선에선 의원 특권을 버리고 실천하는 당이 이길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막 당선돼서 누릴 일만 남은 사람들이 특권을 내려놓겠느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자기 당이 대선에서 져도 내 특권은 못 내놓겠다는 것이 많은 의원의 속마음일 것"이라고도 했다. 홍준표 경남지사 말대로 새누리당은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익집단이고, 야당 운동권에게 의원 자리는 인생의 목표이자 출세의 정상(頂上)이다. 그래서 여야의 의원 특권 버리기 약속이 거의 거짓말로 끝났다. 이렇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특권 포기를 정말 실천하는 당이 나오면 국민이 놀라서 다시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 당이 대선에서 이길 것이다.



-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15/20160615031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