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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석훈 - ‘맞춤형 보육’ 보는 아빠의 눈

irene777 2016. 6. 21. 17:33



[세상읽기]


‘맞춤형 보육’ 보는 아빠의 눈


- 경향신문  2016년 6월 20일 -





▲ 우석훈

타이거 픽쳐스 자문, 경제학 박사



결혼하고 8년 만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감지덕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낼 모래 쉰이 되는 늙은 아빠가 다섯 살, 세 살, 두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난주에 아이들 둘이 수족구병에 걸렸다. 큰 애가 먼저 걸려서 둘째한테 옮겨주었다. 수족구병이 힘든 게, 입이 헐어서 잘 못 먹는 것도 있지만 완치 확정 판정을 받기 전에는 어린이집에 못 간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그 일주일 동안, 진짜 죽다 살아났다. 둘째 애는 태어나자마자 숨을 잘 못 쉬었고, 약하게 태어났다. 아내는 육아휴가를 연장해주지 않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기관지염, 폐렴, 장염, 독감, 철철이 다 걸린다. 키나 몸무게나 다 또래보다 작은데, 이번 병에는 입원이나 하지 않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정도가 부모의 작은 소망이 되었다.


어린이집, 진짜 할 말 많다. 집 앞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기는 한데, 언감생심, 진짜로 턱도 없고, 사설 어린이집 다니다가 겨우겨우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어린이집에 차례가 왔다. 굽신굽신, 두 아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OECD 국가 중에서 저출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나라는 프랑스 정도인데, 국공립 비율이 55% 정도 된다. 서울이 비율이 좀 높기는 한데, 15% 수준이다. 어린이집 등원, 아내와 나는 인생의 절반 정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하던 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 없던 일로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에는 등하교 버스가 없다.


수족구병 같은 영·유아 전염병이 일 년에 몇 번은 돈다. 그리고 정부가 이것저것 제도를 바꾼다고 뭘 또 자꾸 바꾼다. 그때마다 늙은 아빠, 초비상이다. 난 상관없다? 어린이집이 불안해지면 부모들이 다 불안해진다.


맞춤형 보육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불안이 영·유아 전염병 수족구병보다는 몇 배 무섭다. 둘째 애가 딱 그 나이다. 나나 아내나, 뭔가 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벌써 보냈다. 작년 국회 예결위 때 보니까 이걸로 1000억원 약간 넘는 돈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원안이었다. 어린이집 지원 예산을 좀 늘리는 것은 이것과는 상관없이 만성 적자인 어린이집 경영 문제 완화가 이유였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이것저것 다 합쳐서 ‘주는 돈은 늘었다’, 이게 정부가 지금 하는 얘기다. 예산절감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시끄러워지니까 이것저것 주는 돈 늘여서, 결국 ‘더 준다’, 이런 모양새라고 우긴다. 그럼 이걸 왜 해?


아빠로서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가 있다.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덜 보내면 직장 여성의 자녀가 어린이집에 좀 더 가기 쉬워질 것이라는 게 애초의 명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 어린이집 정원은 아침부터 다니는 아이들 수에 맞춰진다. 오후 3시부터 어린이집 보낼 집, 그런 집은 없다. 오후에 좀 더 봐주든 말든, 아침에 등원하는 어린이 수는 같다. 맞춤형 보육을 한다고 해서, 추가로 등원할 수 있게 되는 아이는 없다. 그러니까 애당초 전업주부들이 좀 더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 바쁜 엄마들의 아이들을 좀 더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발상은 관료들의 탁상행정 아닌가, 그게 내 의심이다. 하기로 하니까 그냥 밀어붙여서 하는 일, 이건 아니다.


길게 보면,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이 늘어나야 한다. 더 길게 보면, 어린이 수당 형태로 육아수당도 늘리고, 연령도 7~8세까지는 늘려서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짧게 보면, 수족구병, 눈병, 이런 ‘전염병급’으로 어린이집 흔드는 것이라도 좀 그만하시면 좋겠다.


“엄마들, 어린이집 그만 좀 보내세요”,


저출산 시대에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맞춤형 보육, 도대체 누구를 위한 맞춤인가? 불편함만 잔뜩이지, 이익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행정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0205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