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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갑우 - ‘헌법 3조의 개정’ 논의할 수 있을까

irene777 2016. 6. 21. 17:57



[정동칼럼]


‘헌법 3조의 개정’ 논의할 수 있을까


- 경향신문  2016년 6월 19일 -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치학)



2016년 ‘6월15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한 곳으로 갔다. 군복을 입은 새누리당은 경기 오산시 공군작전사령부에 있었다. 정장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위치는 같은 경기도지만 북쪽인 파주시 임진각이었다. 두 ‘비상정당’은 한국 정치의 일상인 달력정치의 맥락에서 ‘6·15’를 기념하고자 했다. 새누리당에 6·15는 1999년 6월15일 서해상의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발생한 남북한 군사적 충돌인 연평해전으로 기억된다.  더불어민주당은 6·15를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과인 공동선언으로 기억한다. 특정 숫자로 표현되는 사건의 기억하기가 정치적 행위이고, 기억하기 그 자체가 정치투쟁임을 말해주는 2016년 6월15일의 사건이다.


두 기억하기의 투쟁은, 남북관계의 두 이중성의 발현이다. 첫째, 정체성의 문제다. 한 세력은 북한을 적으로 보려 하고, 다른 세력은 북한을 친구로 만들려 한다.


둘째, 남북관계가 국제관계인지 아니면 특수관계인지를 다시금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남북한은 1991년 유엔에 두 국가로 가입했다. 북한은 유엔 결의안에 의해 경제적 제재를 받고 있지만, 유엔 회원국가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1991년 남북한은, 국내법이나 조약과 같은 국제법은 아니지만, 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의 헌법과 이 헌법의 해석에서도 이중성이 현저하다. 헌법 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근거인 헌법 3조는 북진과 같은 군사적 방법조차 배제하지 않으려는 조항으로, 1948년 제헌 시점부터 지속되고 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서는 4조에 ‘평화적 통일정책’의 추진을 추가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헌법 4조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모순처럼 보이는 헌법 3조와 4조의 관계를, 북한은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반국가단체라는 방식으로 풀이한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행동 모두를 정당화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헌법 3조로 한정한다면, 두 당 모두 위헌의 경계 언저리에 있다. 새누리당은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국경처럼 기능하는 해상경계선이라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은 특수관계론에 근접해 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국가성을 사실상 인정하는 정책을 선택해 왔다. 둘 다 헌법 3조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다. 즉 헌법 3조는 두 당의 대북정책 모두를 부정할 수 있는 사실상 죽은 조항이다.


분단국 헌법의 영토 조항이 적대에서 협력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평화과정’의 장애물로 기능한 사례가, 한국이 남한으로 불리듯 남아일랜드로 불리곤 하는 아일랜드공화국의 헌법 2조다. 이 헌법 2조는 대한민국 헌법 3조처럼 아일랜드공화국의 영토를 아일랜드섬과 그 부속도서 및 영해로 규정했다. 아일랜드섬의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일부지만 1937년부터 1998년까지 존속한 이 헌법 2조에 따르면 아일랜드공화국의 영토였다. 북아일랜드의 친영국 세력은 이 헌법 2조를 아일랜드공화국이 자신들을 흡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생각했고, 따라서 아일랜드섬의 평화가 남북 아일랜드의 통일로 이어질까 저어하곤 했다.


아일랜드공화국 내부에서는 아일랜드섬의 통일이 북아일랜드 주민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거부하는 법적 근거로 이 2조를 활용하곤 했다. 1998년의 아일랜드섬 평화협정인 성금요일협정은 흡수통일의 의지를 담은 아일랜드공화국 헌법 2조를 아일랜드섬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일랜드민족의 일원이고, 아일랜드섬의 통일은 남북 아일랜드 주민 다수의 동의에 기초해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개정키로 하면서 함께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20대 국회의 개원과 더불어 개헌 논의가 다시금 점화되었다. 1987년 개정된 헌법 또는 ‘87년 체제’의 한계로, 제왕적인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집중 지적되고 있다. 더불어 기본권으로서 복지권의 강화,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로의 이전을 담은 균형발전론 등도 개헌 의제로 상정되고 있다. 헌법 3조의 개정은 한반도적 맥락에서 기본권으로서의 평화권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2005년 개헌 논의가 일었을 때 여야에서 영토 조항의 개정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개헌 의제의 연계가 개헌의 장벽이 될 수도 있지만, 평화국가 건설이란 시대정신이 개헌의 공론장에 진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92057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