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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 대통령은 정말 개헌을 원치 않을까?

irene777 2016. 6. 21. 18:52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80>


박 대통령은 정말 개헌을 원치 않을까?


- 한겨레신문  2016년 6월 19일 -





▲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4월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행사에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노무현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 해놓고

권력유지 위해 정종섭 내세워 이원집정부제 추진 



4·13 총선 이후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개헌 논의가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에는 공감하는 여론이 높은 것 같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한 1987년 이후 우리나라 국민들은 5년마다 ‘우리를 구원해줄 새로운 메시아’를 뽑는 것처럼 대통령 선거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 잘 할 수 있을거야. 내가 제대로 보고 뽑았으니까 새로운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거야.”


“아니 도대체 대통령은 왜 이 모양이지? 내가 대통령으로 뽑아줬으면 좀 잘해야지, 이게 뭐야. 정말 실망이야. 다음에는 대통령을 좀 제대로 뽑아야지.”


“그것 봐라. 내가 찍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을 잘 할 수는 없는 것이지. 다음에는 내가 찍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해. 그래야 우리나라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을 거야.”


마치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아서 자신의 팔자를 고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30년 정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되자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전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5년 대통령 단임제라는 ‘제도’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입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피로감입니다. 대통령 선거 투표율도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개헌이 안 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 때문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70% 정도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어떤 형태로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데 찬성하는 의견을 모두 합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이제 개헌이 되는 것일까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개헌 당위론과 개헌 현실론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최근 개헌 논의에는 영 탄력이 붙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은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개헌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통과한다는 것은 국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정파가 거의 완전한 합의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은 개헌을 하려면 국민들의 뜻을 존중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권력구조도 중요하지만 기본권이나 경제민주화 조항 등 국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조항을 손질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개정의 역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대부분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주도했습니다. 둘째, 철저히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개헌의 역사를 잠시 살펴볼까요?




-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 (국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선출)


- 1952년 7월7일 1차 개헌 (이승만 대통령 재선을 위한 대통령직선제 발췌개헌)


- 1954년 11월29일 2차 개헌 (이승만 대통령 3선 제한 폐기를 위한 4사5입 개헌)


- 1960년 6월15일 3차 개헌 (4·19 뒤 의원내각제 개헌)


- 1960년 11월29일 4차 개헌 (소급입법 개헌)


- 1962년 12월26일 5차 개헌 (5·16 뒤 대통령제 개헌)


- 1969년 10월21일 6차 개헌 (박정희 대통령 3선 연임을 위한 3선개헌)


- 1972년 12월27일 7차 개헌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유신헌법)


- 1980년 10월27일 8차 개헌 (전두환 대통령 선출을 위한 5공화국 헌법)


- 1987년 10월29일 9차 개헌 (6공화국 대통령직선제 개헌)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민들의 뜻을 존중하고 국회의원들의 토론을 거쳐 개헌을 한 경우는 1960년 4·19 혁명 뒤 3차 개헌과 1987년 6월항쟁 뒤 9차 개헌 두 차례 정도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발의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입니다. 동시에 새누리당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주요 정치인입니다. 4·13 총선 이후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는 이른바 친박 의원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122명 당선자 중에서 대략 70여명을 친박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개헌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지난 6월7일치 칼럼에서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는 개헌을 위해 ‘친박’과 ‘친노’를 뺀 세력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현실적인 얘깁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6일 언론사 편집국장 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개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거 때 이번에 우리가 되면 개헌을 주도하겠다든지 그런 ‘개’자도 안 나왔다. 오히려 경제 살리겠다, 일자리 더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그만큼 국민들이 그 부분에 절박해 있다.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나.”


하지 않겠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경제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사실 개헌을 원하고 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은 개헌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로 넘기는 의원내각제나, 권력을 대통령과 국회로 분산시키는 분권형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직접 해보니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제도인지 잘 알게 됐을 것입니다.


둘째, 이미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퇴임 이후가 걱정될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이후 모두 불행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새로 쥔 대통령은 늘 전임자를 희생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변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의원내각제나 분권형대통령제에서는 정당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분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에서 그렇게 무리를 해가며 친박들을 국회에 밀어넣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퇴임 이후에도 친박 의원들만 장악하고 있으면 권력을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친박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임 이후에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을 따를 것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닙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친박 실세로 알려진 최경환 의원, 홍문종 의원 등이 이미 여러차례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현기환 김재원 전현직 정무수석들은 그럴 때마다 개헌 추진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부인의 강도로 보아 속도조절용 제동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2016년 3월10일 안동시에서 열린 경북도청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가끝난후 정종섭 예비후보와 악수를 나누고있다. 안동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눈여겨 볼 인물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안전행정부(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됐다가 국회의원이 된 정종섭 의원(대구 동갑)입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해 온 헌법학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한 뒤 4·13 총선에서 ‘진박’ 명찰을 붙여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로 내려보낸 이유가 뭘까요?


정종섭 의원을 잘 아는 어느 정치인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 밀명’을 띠고 국회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은 각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정종섭 의원이 6월16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띄웠습니다.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최근 개헌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합니다.


정치권에서는 개헌론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권이 먼저 국민들에게 개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개헌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개헌은 연내에 신속히 처리해야 합니다.


현재 경제가 어렵습니다. 개헌 논의로 경제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습니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따라서 차분한 논의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복잡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내 개헌 논의를 끝내기 위해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합니다.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입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중 선택을 하면 됩니다.


저는 학자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가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6월15일 <문화일보>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문화일보>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그대로 띄워놓았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진박’ 정종섭 “개헌 논의 연내 마쳐야… ‘블랙홀’ 없을 것”


“권력구조만 ‘원포인트’개헌

 이원정부제로 가는 게 타당”

 헌법학자 출신 與초선의원


헌법학자 출신이자 지난 4·13 총선에서 진박(진실한 친박근혜) 후보로 꼽혔던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이 15일 “올 연말까지 개헌 논의를 완료해야 한다”고 밝혀 주목된다.


정 의원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헌을 하려면 내년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논의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개헌의 방향과 관련해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이 돼야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이원집정부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우리 헌법 규정이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다”며 “결국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 구조가 어떤 식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국민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개헌 블랙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권력구조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 토론을 하고 어떤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면 된다”며 “개헌은 개헌대로 추진하면 되는 것이고, 청와대와 정부는 민생 개혁 과제 등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헌법학원론’ 등 헌법 교과서와 헌법 관련 서적 여러 권을 저술했고, 지난 2009년에는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뒤 대구에서 공천을 받아 4·13 총선에서 당선됐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중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로 통한다.


정 의원은 개헌 논의를 위해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가혁신을 위한 연구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정 의원이 대표의원을 맡는 연구모임에는 여야의 대표적 개헌론자인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특별회원으로 헌법학자도 포함될 예정이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아바타’ 정종섭의 “이원집정제 개헌” 주장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정종섭 의원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원포인트 개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에 제안했던 개헌 방식입니다. 차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요구한 데 비해, 정종섭 의원은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가운데 선택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7년 1월9일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대국민담화문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조정하면서, 현행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출 것을 제안합니다. 현행 5년의 대통령제 아래서는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국정의 안정성을 약화시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개헌을 제안하는 것은 어떤 정략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습니다.”


“대통령 4년 연임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닙니다. 누가 집권을 하든, 보다 책임있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당선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입니다.”




돌고 도는 것이 세상사인가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제의를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한 마디로 짓밟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는 대리인을 통해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직접 하지 않고 정종섭이라는 ‘아바타’를 통해서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염치가 없을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려다가 실패하면 큰 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망신을 주고 정치적으로 좌절시켰습니다.


레임덕 걱정도 있을 것입니다. 개헌 논의는 흡입력이 워낙 강해 실제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추진할 경우 모든 것을 빨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걱정하는대로 국정은 표류하고 경제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임기를 마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겁이 나겠지요.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구조 개편으로 퇴임 이후 안전도 확보하고 당장의 국정 장악력도 놓치지 않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겠지요. 잘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487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