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강기희 우화소설 <원숭이 그림자>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6월 15일 -
일전에 만난 어떤 소설가가 그랬다. 소설가는 자기만족을 위해 소설을 쓰기도 한다고. 그게 무슨 얘기냐고 다시 물었더니 소설가는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소설에서 구현하는 재미(보람?)에 소설을 쓴다고 했다. 강기희의 장편 우화소설 <원숭이 그림자>를 읽고서 ‘어떤 소설가’의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 강기희 작 <원숭이 그림자> 표지
<원숭이 그림자>는 작가가 표방한대로 우화소설이다.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니다. 동물이다. 그러나 무대와 사건, 등장인물들은 전부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풍자, 은유한 것이다. ‘웃픈 현실’을 그린 것이어서 작금의 현실만큼이나 서글프고도 재미가 있다. 다소 직설적인 것이 흠이지만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 전개를 알고 읽으면 공부도 되고 재미도 있다.
태초에 피스(peace/한반도)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도 고요한 숲이었다. 피스(peace)의 평화가 깨진 것은 강 건너 숲에 서식하던 원숭이(일제 침략자)가 떼로 몰려와 피스를 강제로 빼앗은 데서 비롯됐다. 원숭이가 숲을 점령한 기간은 무려 사십 여년(일제 강점 36년). 숲에서 세력을 키운 원숭이는 이웃 숲을 공격하면서 전쟁(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는데 북극곰(소련)과 흰머리독수리(미국)이 연합하여 원숭이 숲 본토(일본)를 공격했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원숭이는 결국 항복하였고 숲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숲에는 새로운 점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 숲은 북극곰이, 남쪽 숲 절반은 흰머리독수리가 차지했다. 이들은 각각 점령지에 S피스(남한), N피스(북한)라고 칭했다. N피스는 북극곰의 지원을 받은 독립군 대장 출신인 곰(김일성)이 숲통령을, S피스는 흰머리독수리의 지원을 받은 늙은 염소(이승만)이 숲통령을 맡았다. 숲통령이 된 늙은 염소는 친원파(친일파)들을 끌어들여 숲정부를 구성했다. 늙은 염소는 욕심이 많아 숲통령 종신제를 꿈꾸려다 숲민들이 혁명(4.19혁명)을 일으키자 흰머리독수리숲(미국)으로 도망쳤다. 이후 민주정부가 들어섰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이번에는 먹바위(박정희)가 반란을 일으켜 숲통령이 되었다. 종신집권을 꿈꾸던 먹바위가 심복(김재규)의 총에 절명하자(10.26사건) 일대 혼란 끝에 대머리독수리(전두환)가 권력을 찬탈하면서 S피스는 또다시 독재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집권 7년 만에 대머리독수리가 쫓겨난 후 5년에 한 번씩 숲통령을 뽑기로 S피스 법에 명시했다.(87년 개헌) 근래 숲통령이 된 자는 원숭이 나라(일본)에서 태어나 먹바위 집에서 집사노릇을 했던 시궁쥐(이명박). 시궁쥐는 재임기간 내내 산책로를 만들거나 아름다운 계곡을 파헤쳐 그 자리에 별장과 식량 창고를 만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봄이 가고 새로운 숲통령 선거(2012년 18대 대선)가 다가왔다. 후보는 먹바위 딸(박근혜)와 독립운동가 집안인 느릅나무 후손이 맞붙었다. 친원파(친일파)가 장악한 피스에서 느릅나무 후손의 선전으로 먹바위 지지자와 친원파는 크게 당황하였다. 이에 크게 진노한 먹바위 딸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긴급 소집한다. 이 자리에는 S피스 총리를 비롯해 정보기관인 숲얼단 단장과 정보사령관, 피스경찰청장, 친원파 총재, 먹바위 딸 선거대책본부장 등이 참석했다...(이하 생략)
무대배경은 ‘숲’, 시작은 ‘숲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설의 대부분은 관권개입 등 부정선거로 당선된 먹바위 딸의 집권 이후 숲에서 발생한 각종 일탈과 실정(失政)을 다룬다. 한 예로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의 ‘긴급조치’를 연상시키는 ‘꽃바람 1.2.3호’가 그것이다. 숲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독재통치의 전형이다. 독재권력의 결말은 비참한 패망이다. ‘숲민’들의 혁명으로 숲통령 ‘먹바위 딸’이 뾰족산에 유폐되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강기희 작가가 <원숭이 그림자>에 담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현존하는 친일세력의 잔재와 그들이 빚어내는 갖가지 정치적 패악행위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 또 하나는 갖가지 비리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제도라는 이름 아래 엄연히 실체로서 존재하는 현 정권에 대한 파멸 기대감. 현실에선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것을 작가는 소설의 무대에서 명쾌히 구현해냈다.
우화소설인데다 무대가 ‘숲’인 만큼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닌 것이 읽은 재미가 있다. 특히 각 동물의 특성을 반영하여 정보기관인 숲얼단 단장은 ‘늑대’, 먹바위 딸 선거대책본부장은 ‘독사’, 숲 경찰청장은 ‘족제비’, 숲총리는 ‘불곰’, 여기에 늙은 고라니, 멧돼지, 반달곰, 너구리. 들개 등등. 이밖에 세월호 참사를 빗댄 수상사고도 등장하며, 척살단에 내부반란 등 세력 간의 음모 얘기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 강기희 소설가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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