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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정렬 - 지연된 정의

irene777 2016. 7. 14. 02:42



<야! 한국사회>


지연된 정의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1일 -





▲ 이정렬

전 부장판사



2015년 8월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재판이 너무나 지연되었다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대법원에서만 2년, 1심부터 5년이 걸렸다. 그사이 피고인은 할 거 다 하고 임기를 마쳐간다”며 “선고 결과를 떠나 사법 역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1조는 판결의 선고 기간을 정하고 있다. 1심은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개월, 상고심은 기록을 송부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는 법률 격언과 함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부인하는 것이다’라는 법률 격언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정의가 세워진들 무엇하랴. 적절한 시기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정의를 세웠다는 판결문은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한데.


여기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2013년 1월4일, 1999명의 국민이 모여 제18대 대통령선거의 위법함을 주장하는 내용의 대통령선거 무효 확인의 소를 대법원에 제기하였다. 공직선거법 제225조는 선거에 관한 소청이나 소송의 경우 법원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소송의 판결 선고 기한은 2013년 7월3일이었던 셈이다.


대법원은 이른바 ‘법률심’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재판을 열지 않고 서면심리만으로 판결을 선고한다. 다만, 선거무효 소송은 대법원에 바로 제기되기 때문에 재판을 열어 사실관계 심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2013년 9월26일을 첫 재판기일로 지정했다. 피고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쪽은 그 직전인 9월17일 재판 연기를 신청했고, 재판부는 바로 당일 그 신청을 받아들여 재판을 연기했다. 그것도 무기한으로. 대법원은 2015년 1월5일 ‘이 사건은 여러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하여 심층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고는 여태 재판을 한 번도 열지 않고 있다. 언제 판결이 선고될지 도무지 기약이 없다.


물론 사안의 성격상 충실한 심리가 필요하기는 하다. 다른 관련 사건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관련 사건과 통일된 결론을 내는 것과 별개로 사실심리는 해야 한다. 원고들과 피고가 다른 사건에는 관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별도로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아야 할 나름의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충실한 심리를 하려는 의도라고 해도, 재판조차 열지 않고 있는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헌법 제65조 제1항은 ‘법관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러한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는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아니, 탄핵까지 갈 것도 없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 확정 판결 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했던 말은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의 말과 함께, 평생 법을 다루며 살아온 대법관들의 양심을 두드린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 일반 국민이었다면 그렇게 긴 시간을 끌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치인들조차 아무 말이 없다. 탄핵의 대상이 되는 대법관들, 자신의 정파에 유리할 때만 법의 엄정함을 들먹이는 정치인들 모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서라. 이렇게 높은 분들 욕했다가 지연된 정의나마 세우지 못할까 두렵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18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