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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종 - ‘신분제 사회’를 바꾸는 길

irene777 2016. 7. 15. 18:35



[정동칼럼]


‘신분제 사회’를 바꾸는 길


- 경향신문  2016년 7월 12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역사교육학과)



‘99%의 민중은 개·돼지 같은 존재다’, ‘신분제 사회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발언이 온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뒤늦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과도 하고, ‘취중에 논쟁을 벌이다가 나온 말실수’라고 변명을 해보아도 여론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이런 분노의 밑바탕에는 실제로 현재 한국사회가 ‘신분제 사회’라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교육부도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한국사회가 ‘신분’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을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누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더 세분화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출생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면 그 사회는 신분제 사회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장관이나 총리 후보자가 지명될 때면, 본인이나 자식의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를 몇 채 가지고 있거나 농촌에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전입을 한 사실도 자연스럽다. 검사가 100억원이 넘는 주식 차액 소득을 올리고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수임료로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뉴스도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뉴스에 분노하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지리적으로는 한국이라는 같은 공간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은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경제력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겠지만, 그 요인이 반드시 전부는 아니다. 일반 대중이야 설사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수천만원의 돈을 쓸 마음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병역면제는 떳떳하게 합법적 조치를 하며, 위장전입이야 법을 무시해버린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그때도 원칙적으로 노비를 제외한 모든 성인남자들은 법적으로 군대에 가야 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양반사대부들은 병역에서 면제됐다. 처음에는 관직에서 국가에 봉사한다는 이유로 면제됐지만, 나중에는 양반 출신이라는 것 자체로 면제됐다. 그리고 이것은 합법이었다. 땅을 넓히고 부를 축적하는 데는 탈법, 불법적 행위를 자행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끔은 실제로 처벌을 받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사회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나향욱 기획관이 신분제 사회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도 민본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백성을 굶어 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며, 전염병이 돌면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 힘썼다. 흉년이 들면 구휼미를 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민중을 자신의 의지를 주체적으로 관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존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먹고살게 해주면 충분한 존재로 인식했을 뿐이다. 신분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의사는 결코 없었다. 나향욱 기획관이 민중을 ‘먹고살게만 해주면 되는 개·돼지’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선후기 신분제를 무너뜨려 간 것은 양반사대부들의 자각이 아니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민본의식도 아니었다. 그들이 낮잡아 보던 민중의 저항이었다. 조선후기 들어 민중은 신분적 차별에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했다. 군역을 피해 도망도 하고, 양반지주들에게 바치던 소작료의 납부를 거부하거나 줄이는 방안을 찾기도 했다. 화적이 되어 무력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경제력을 갖춘 일부 농민들은 돈으로 양반을 사기도 했다. 더 이상 신분제의 유지가 의미가 없게 된 권력층은 점차 신분적 차별을 하나둘씩 없애야 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의 사회적 특권을 뒷받침하던 신분제가 무너져가는 징조였다.


오늘날 사회가 나향욱 기획관이 말하는 1%가 좌우하는 신분제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공고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야 한다. 이를 이루는 길은 1%의 자각이 아니라 99% 민중의 저항이다. 그 저항이 조선후기 사회와 같은 방식이 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사회에 맞춰 지속돼야 한다. 선거에 적극 참여해 투표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주민소환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여론 조성과 지역공동체 운동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행동을 통해 99%의 민중이 주체적 자아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신분제 사회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로 바꾸는 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22109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