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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헌, 그 머나먼 여정

irene777 2016. 7. 20. 00:13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84>


개헌, 그 머나먼 여정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18일 -





 국가전략포럼이 지난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회·원로 간곡한 호소에도 민심은 싸늘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없는 권력투쟁”

박 대통령 나서지 않으면 개헌 불가능


개헌 요구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들어 몇 가지 움직임만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11일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20대 국회 개헌 추진 모임’에서 20대 의원 300명 전원에게 개헌 제안서를 발송했습니다. 이들은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 200명을 모아 9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는 21일까지 1차 추진위원들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새누리당은 권성동 의원, 더불어민주당은 백재현 의원, 국민의당은 김동철 의원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전략포럼 주최로 ‘국민이 바라는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덕룡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와 김세연 의원,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법제실과 한국헌법학회가 제헌 68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했습니다. 주제는 ‘헌정사를 통해 본 민주주의 발전과 새로운 헌법질서’였습니다. 개헌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30여년간 헌법을 운용한 결과, 새로운 헌법질서를 통해 국가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며 “개헌에는 단순한 권력구조의 변경만이 아닌, ‘87년 체제’가 미처 품지 못했던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이 제대로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시각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사단법인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의 주최로 ‘왜 개헌인가’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 회장,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 등이 축사를 했습니다. 강연에 나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현재 대한민국은 중장기 계획도, 성장동력도, 선택과 집중도 안 되고 있는 상황으로, 국가 사회적 경쟁력, 삶의 의욕, 미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며 “개헌은 국가 생존의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각제 부정적 잔상으로 설득 쉽지 않아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부겸, 민병두, 박영선, 이상돈, 진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개헌을 말하다’ 시리즈 첫 번째 김형오 전 국회의장 초청 강연이 열렸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김진표·김현권·박광온·백재현·변재일·윤후덕·이춘석·전현희·진선미·최운열 의원, 새누리당 박순자·주호영 의원,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개헌 시기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심각하고 절박한 만큼 2017년을 목표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유력 대권후보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정국 및 정권의 집권 후반기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이야말로 개헌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권력구조에 대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개헌을 숱하게 논의했지만 이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처음 말한다”며 “대한민국이 잘 되려면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 제2공화국 시기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인 잔상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원정부제와 수정된 대통령제도 각 장점이 있는 만큼 모든 상황을 열어놓고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부겸, 민병두, 박영선, 이상돈, 진영 의원은 오는 18일 오후 3시 헌정기념관에서 ‘어떤 헌법인가’를 주제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4년중임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에 대한 의원간 토론을 할 예정입니다.


14일 오전 11시에는 전직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각계 원로 37명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회 헌법개정특위 구성과 분권형 개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국회가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속히 개헌작업에 착수하여 내년 상반기에 헌법 개정을 완료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 기자회견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계>


김원기(전 국회의장) 김형오(전 국회의장) 박관용(전 국회의장) 임채정(전 국회의장) 정의화(전 국회의장) 이수성(전 국무총리) 이한동(전 국무총리) 이홍구(전 국무총리) 정운찬(전 국무총리) 권노갑(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상현(전 민추협의장 대행) 신경식(헌정회 회장) 이우재(전 민중당 대표) 이종찬(전 민정당 원내총무) 정대철(전 민주당 대표)



<종교계>


인명진(경실련 공동대표) 김명혁(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박종화(경동교회 원로목사) 법륜스님(평화재단 이사장) 도법스님(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영담스님(전 불교방송 이사장) 지홍스님(조계종 포교원장) 김홍진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선종 교무(원불교 원로교무) 김대선 교무(원불교 평양교구장) 박경조(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남수(전 천도교 교령, 한국종교연합 상임대표)



<시민사회 및 학계>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이창복(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민주화운동공제회 이사장) 이갑산(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 반재철(전 흥사단 이사장) 신필균(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 김정숙(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차경혜(전 YWCA회장) 김형기(경북대 교수, 지방분권개헌 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이기우(인하대 교수, 지방분권개헌 국민운동 공동대표)




상당한 명망가들입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문 전문은 길지 않습니다.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해 온 우리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초당적 입장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개헌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한 중요한 국가과제라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이에 국민 여러분께 그 취지를 알리고 여야 제 정당이 이를 수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직선제를 통해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성취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내년이면 30년이 되는 현행 87년 헌법은 급변하는 우리사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행 헌법은 군부권위주의 시대의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기 위한 민주화로 가는 도정에서의 과도기적인 헌법이었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하여 식물대통령으로 그 임기를 마쳤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하여 분권형 권력구조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국회는 헌법개정특위를 만들어 각계각층에서 요구하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각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우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헌법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먼저,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국회 등 여러 기관으로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여 중앙 집중 국가운영 구조를 중앙과 지방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국가 체계로 변경함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확장된 국민 기본권을 반영하고 개헌 발의를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급변하는 시대변화와 국민의식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회는 제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개헌 요구를 수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내년 상반기 안에 국민의 손으로 새 헌법을 만들어 개정된 헌법에 따라 다음 선거를 치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추리면 ‘지금 즉시 국회에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해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을 하고 새로운 헌법에 따라 다음 선거를 치르자’는 획기적 제안입니다.



김무성 “한 사람의 인치로는 대한민국 운영할 수 없다”


14일 오후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개헌론에 가세했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지지자 1200여명을 모아 놓고 전당대회(2014년 7월14일) 승리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연설 말미에 미리 준비한 원고에 없는 개헌 얘기를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 또 파란이 일 거 같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 체계를 바꿔야 한다. 여야 간 극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야 될 때가 됐다. 한 사람의 인치로는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없다. 권력을 나누고 혁신해야 한다. 여야 간 연정을 할 수 있는 권력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제 기억에 1987년 6월항쟁과 그로 인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여야 정치인들과 각계 원로들이 이번처럼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서 개헌을 요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개헌 요구에 대해 민심의 반응은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민심의 반응은 1차적으로 언론을 통해 나타납니다. 15일 아침 신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몇몇 신문이 각계 원로들의 개헌 요구를 정치면에 1단 또는 2단 기사로 다뤘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 행사 기사의 제목을 개헌으로 단 신문도 있었습니다.




<국민일보> 5면 : 김무성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야 한다”


<동아일보> 6면 : 각계원로, 국회 개헌특위 구성 촉구


<조선일보> 6면 :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원로 30명 특위 제안


<중앙일보> 12면 : 김무성 “제왕적 권력 바꾸는 개헌을…여야 연정 필요”


<한국일보> 6면 : 정계원로들 “국회 조속히 개헌특위 구성을”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언론들은 최근 20대 국회의 개헌 움직임, 정세균 국회의장 및 전직 국회의장의 개헌 발언 등을 주요 기사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이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21~23일 전국 성인 1002명에게 개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관심 있다 43%, 관심 없다 46%로 나왔습니다. 개헌에 대해 정치인들과 각계 원로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과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질문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 정치인들이나 각계 원로들은 왜 개헌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요? 둘째, 일반 국민들은 왜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해 식물대통령으로 끝나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원로들의 성명 안에 들어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하여 식물대통령으로 그 임기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치로는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없으니 권력을 나누고 혁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재정권 차단에 초점을 맞춘 1987년 권력구조가 이제 더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었으니 제도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정치인과 각계 원로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일반 국민들에 비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정치학자에게 물어봤습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개헌이 내 삶의 문제와 직접적이고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개헌을 권력 배분에 대한 정치인들끼리의 고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어차피 그들(부와 권력과 배움이 있는 자들)만의 생각과 이해에 따른 논의여서 기대할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할 기회를 갖지 못한데다 개헌 논의가 사회경제적 의제가 아니라 권력구조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정치학자의 분석이 비슷합니다. 선거 현장 경험이 많은 고참 보좌관에게 물어봤습니다. 매우 강렬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내가 왜 개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는 생각이 강하다. 더구나 의원내각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데 정치인들이 우리의 권리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퇴물들이다. 자신들이 대통령 권력에 가까이 있을 때는 단물을 빨아먹다가 이제 와서 개헌을 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가지고 여야 의원들과 사석에서 토론도 해 보았습니다. 제가 던진 질문은 ‘개헌이 과연 가능할까’였습니다. 의원들은 대부분 ‘개헌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적극 찬성했지만, ‘개헌을 할 수 있을지’ 현실론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과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지분을 가진 모든 세력이 개헌안에 사실상 합의해야 가능합니다.



박 대통령이 물꼬 터주고 문재인·안철수 적극 나서야


새누리당 의원 129명 가운데 70여명이 친박 성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직적 위계질서라는 여당의 전통과 분위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을 논의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 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개헌에 적극 나서기 어렵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당은 모든 초점이 2017년 12월 정권교체에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야권의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극 나서야 개헌 논의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적극 나서야 국민의당 의원들이 개헌에 적극성을 띨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가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별로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지금처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그리고 전직 국회의장 및 국무총리들이 아무리 나서 봐야 개헌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깁니다. 개헌,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52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