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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민아 - 박근혜의 사드

irene777 2016. 7. 20. 03:45



[김민아 칼럼]


박근혜의 사드


- 경향신문  2016년 7월 18일 -





▲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위원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을 발표한 지 열흘이 넘었다. 그사이 국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짚어본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무대로 돌아왔다. 4·13 총선이 새누리당 참패로 끝난 후 박 대통령의 처지는 곤궁했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전횡이 패인으로 지목되면서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기류가 감지됐다. 해외순방을 다녀와도, 링거 투혼을 호소해도 지지율은 3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의 시선은 미래권력에 쏠렸다. 사드 배치 결정은 레임덕 문턱까지 몰린 박 대통령을 무대로 복귀시켰다.


둘째, ‘사드 블랙홀’이 다른 이슈를 집어삼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도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치를 또다시 낮춰도, 청년실업률이 17년 만에 최고치(6월 기준)를 기록해도 톱 뉴스는 사드 몫이었다. 사드와 경쟁이 가능했던 이슈는 교육부 간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뿐이다.


셋째, 거야(巨野)의 틈새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대 국회 개원 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지 문제 등에서 공조를 과시해왔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의당은 일찌감치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 중이다. 반면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만 되풀이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넷째, 전선이 재구축됐다. 총선 이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무산되자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 모두 불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 전 여권 지지층 상당수가 이탈했던 터다. 사드가 도입될 경우 TK에 배치될 것이란 설까지 확산되며 지역 민심은 더 악화됐다. 박 대통령이 묘수를 뒀다. 사드 도입을 결정하되 배치지역 발표는 미루고(8일), TK 숙원사업인 대구 군·민간공항의 통합 이전을 약속했다(11일). 이후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가 발표됐다(13일). 대통령은 “논쟁을 멈추라”고 지침을 내린 뒤 출국했다(14일). 난감한 일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의 가게무샤(대역) 노릇을 해온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에서 계란과 물병 세례를 맞았다(15일). 친여 언론은 ‘폭력 프레임’으로 전환하고 경찰은 외부세력 개입 여부 수사에 돌입했다(16일). 여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이 저항할 대상은 김정은의 북한이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다”라고 했다(17일). 시민은 ‘성숙한 애국세력’과 ‘괴담에 휘둘리는 종북세력’으로 분류됐다. 현 정권이 애용해온 ‘두 국민 전략’ ‘갈라치기 전략’의 재연이다.


사드 배치 발표는 당초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열리는 10월쯤으로 예상돼왔다. 석 달가량 앞당겨진 데는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정책 담당자인 프랭크 로즈 국무부 차관보의 방한(2~5일) 직후인 7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린 게 이를 방증한다. 추가적 요인은 없었을까. MD 문제에 천착해온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푸른역사아카데미 강연에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자발성이 (일부) 있었다고 본다. 박 대통령에게는 배신이나 무시를 당했을 때 보복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미국의 요구가 핵실험을 하는 북한을 혼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정서와 부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사드가 내년 말 가동에 들어간다는데, 대선과 맞물린 상황에서 야권을 공격할 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내년 말 사드 배치가 끝나 운용될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시점 치러지는 대선에서 야권이 안보 이슈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한겨레 칼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이겼다면 박 대통령이 결정을 서둘렀겠느냐. 수세에 몰린 보수세력이 전선을 다시 선명하게 그으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효과까지 의도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대선에서 안보 이슈가 부각될 경우 경제 실정(失政)이 가려질 가능성이 짙은 것은 사실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당 후보가 된다면 ‘외교안보 대통령’을 표방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경제보복과 북한의 군사행동으로 시민 불안이 임계치를 넘어설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사드 문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집권세력을 타격하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어제 귀국했다. 사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진경준·넥슨 게이트’ 연루 의혹까지 터졌다. 우 수석은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이다. 사드가 ‘우병우 스캔들’까지 덮을 수 있을까. 사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든, 정권에 불리한 현안에 대해서든.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8175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