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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상희 - 사드 배치는 국민주권의 문제다

irene777 2016. 7. 29. 02:36



[정동칼럼]


사드 배치는 국민주권의 문제다


- 경향신문  2016년 7월 24일 -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은 권력의 노리개가 아니다. 국가운영의 중심에 헌법이 자리하는 궁극의 목적은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헌법은 권력의 위에 자리 잡고 그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법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헌법은 권력자의 손아귀에 든 종이문서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제헌헌법이 이승만의 권력욕으로 졸지에 어중간한 대통령제로 변형된 이래, 헌법은 틈만 나면 권력에 의해 조롱되고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왜곡되며 심지어 권력의 행방에 따라 그 존재조차 부정되기까지 한다.



최근 검찰과 청와대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제시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향한 여당의 위헌론은 대표적 사례다. 헌법의 지엽말단적인 글자 몇 개를 빌미로 검찰을 절대불가침의 성역으로 만들고 공수처는 이를 침범하는 불경한 것으로 단정한다. 검찰을 통한 독립된 법 집행이라는 애초의 헌법 명령은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의 이런 유착 속에서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상시청문회나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권 등 국회법개정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상의 통치구조는 대통령제이지만 그 밑바닥의 기본원리는 대의제다. 국회가 국정운영의 중심이며 모든 권력은 국회의 견제하에서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대원칙을 일거에 부정한 것이 이 사태들이다.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 운운했지만, 정작 일의 과정은 대통령이 국회와 헌법 자체를 능멸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사드 배치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는 한술 더 뜬다. 그것은 “중대한 재정상의 부담”을 야기하며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세력 분포를 바꿔 우리의 “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친다. 헌법은 이 경우 국회의 비준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한다.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은 정부가 독단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 절차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처리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집행행위 운운하며 이를 피해간다. 대의제와 국민주권에 터 잡은 우리 헌법은 미국과 체결한 조약의 하위 규정만큼의 취급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드 배치 반대집회와 관련해 “외부세력”론이나 “불순세력” 등의 막말 행렬은 그대로 헌법 부정이라는 극단에까지 이른다. 사드의 배치는 전 국민의 문제다. 그에 대한 찬반 의사의 표현은 정부 독단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저항이라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를 굳이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 정도로 폄훼해 버린다. “외부세력”론은 이 때문에 반민주적인 거짓말이 된다. 우리 모두의 문제를 성주 군민만의 문제로 축소하는 한편, 일부 일탈자들의 선동과 떼쓰기 수준으로 깎아 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불순세력론은 국가를 절대신성한 존재로까지 포장한다. 원래 불순(不順)이라는 말은 공손하지 않고 윗사람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 위계질서가 도전받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훈육자가 생도들에게 하는 가장 권위주의적인 언사이다. 혹은 국가의 신성함을 내세우며 “천황”이 모든 국민(신민)들 위에 군림했던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서나 통용되던 말이다. 그래서 민주국가의 정치권력자는 이 말을 쓸 수가 없다. 모든 국민이 주권자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체제를 부정하는 의미가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집권자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국민들을 이리저리 분열시켜 이간하며, 검찰과 경찰이 그 대통령의 말 한마디만 좇아 법도 정의도 내팽개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권위주의 시절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다 말할 수 없게 된다. 혹은 그런 정부·여당을 두고도 전략적 모호성 운운하며 스스로 권력의 개미무덤에 빠져드는 야당이 방치되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다.



어쩌면 1% 대 99%의 신분제를 내세운 “개돼지”론은 망가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뚜렷한 예후다. 일부 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비굴한 관료들이 그 손발이 돼 헌신하며 탐욕스러운 자본이 그에 유착된 사회라면, 그것은 군사쿠데타를 핑계 삼아 다시금 권위주의 시절로 퇴행하는 터키의 경우만큼이나 위태하다. 권력이 헌법을 가지고 장난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헌법을 보호해야 한다. 헌법은 우리가 “개돼지”가 아님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유일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421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