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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종임 - 여기가 더 무서워요

irene777 2016. 7. 29. 16:58



[문화비평]


여기가 더 무서워요


- 경향신문  2016년 7월 26일 -





▲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국 좀비영화라는 타이틀을 단 영화 <부산행>이 KTX급의 속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큰 흥행을 한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의 완성도와 좀비 재현방식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상업영화 <부산행>의 완성도는 어떨지, 과연 한국에서 좀비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이 영화는 현재 개봉 5일 만에 관람객 500만명을 넘어서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대중과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부산행>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대한민국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도시 부산으로 가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좀비에 주목하기보다, 좀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이, 임신부 가리지 않고 좀비 무리에 던져버릴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인간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중 여고생 진희의 대사는 우리를 더욱 소름끼치게 만든다.


다른 칸에서 좀비를 피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음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들을 마주한 여고생 진희는 “여기가 더 무섭다”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부산행>의 등장인물 천리마고속 상무 용석은 자신이 살기 위해 좀비 무리에 옆에 있는 사람을 던져버린다. 영화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고통과 생존에만 관심을 갖는 극한의 이기심과 비도덕성을 보여준다. 그런 <부산행>의 세계는 현실과 너무나 닮았고, 그러한 공감대가 이 영화의 흥행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인은 완벽하게 배제시키는 모습은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을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발언도 문제지만, 발언을 한 사람이 바로 공직자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큰 충격에 빠트렸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하며, 구의역에서 죽은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처럼 생각되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위선이라는 발언 등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고, 결국 7월19일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의 ‘파면’ 처분을 받았다.


그뿐인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4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한국장학재단 사업에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무이자 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고 말해 대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미디어에서 청년의 학자금 대출, 청년실업 문제를 그렇게 많이 다뤘지만, 정작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전혀 공감하고 있지 못했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막말도 도마에 올랐다. 홍준표 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는 정의당 경남도의원에 대해 홍 지사가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되는 게 아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라는 발언을 한 영상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정치인들의 문제적 발언을 나열하기엔 지면이 부족하다. 공직자가 우월의식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공직자들의 발언에 분노한 한 대학생은 페이스북에 ‘개·돼지 유니온’을 만들기도 했다. 페이스북 운영자는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서, ‘실제로 저럴까’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바로 현실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언론에서는 연일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를 고발하지만, 당사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거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는 답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결국 대중의 적극적 행동이 있어야만, 이러한 ‘극한의 이기주의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생각과 신념을 지닌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비리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지녀야만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더 무서운’ 곳으로 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6203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