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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수민 - 치워라, 경북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irene777 2016. 8. 2. 18:50



<지역이 중앙에게>


치워라, 경북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27일 -





▲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 녹색당



일부러 인구 적은 시골을 노린 것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일대 실수를 저질렀다. 성주 군민들의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은 경이롭다. 지역 내에서 아마 ‘한반도 배치 반대’를 외치기는 부담스러우니 ‘성주 배치 반대’로 가닥을 잡자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만한 시골에 살았다고 과녁이 된 성주 군민들은, 세상의 원성을 피하고 피해 자신들의 마을에 들이닥친 사드가 그 어디에서도 불필요한 물건임을 빠르게 간파했다.


그런데 성주 군민들의 투쟁이 달갑지 않은 건 정권, 여당, 사드 배치 찬성파들만은 아닌 것 같다. 성주 지역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임을 상기시키며 야유하는 인터넷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도에서 밀양에서 영덕에서 핵발전소와 고압송전탑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 이것은 구미의 박정희 기념사업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구미 지역 참여연대, 와이엠시에이, 경실련의 반대운동에 힘입어 박정희 기념 대규모 뮤지컬은 취소되었다. 그런데도 마치 사업이 계속 추진되는 양 구미 지역에 욕이 쏟아진다. 나는 이제 확신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들은 새누리당 못지않게 경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경북이 욕먹어 싼 지역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건가.


2012년 총선에서 경북 지역 새누리당 정당득표율은 69.2%였고 구미는 67.5%였는데, 같은 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경북 지역 득표율은 80.8%로 훌쩍 뛰어오르고 구미도 80.3%였다. 하지만 올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경북 지역 정당득표율은 58.1%에 그쳤고 구미에서는 50.4%로 주저앉았다. 흥미롭게도 박정희 생가 주변 몇몇 동네에서는 50%를 밑돌기도 했다. 경북도 널뛰기를 해온 것이다. 원인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같다.


우선 2012년 당시, 지역에서 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대기업의 역외 이탈 우려가 상존하는 구미에는 “박근혜가 되어야 공단 위기를 막을 그나마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세설이 순식간에 확산되어 있었다. “요즘 시대에 대통령이 그걸 할 수 있는가?”나 “새누리당 정권은 도리어 수도권 규제완화로 비수도권 공단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반론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거나 “수도권 규제완화는 노무현 정권도 했다”는 재반론을 차단하지 못했다. 이런 식의 ‘지역발전론’은 여타 지역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공단 활성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경제는 더욱 나빠졌다. “누구누구는 박근혜 찍어야 구미 잘된다 떠들더니 요새는 찍소리도 못한다.”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높았던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대를 이어 충성하는 것’이나 고릿적의 지역주의와는 차원이 달랐다는 게 ‘더 속지 않는다’는 지역 표심으로 입증되었다. 경북 사람들도 불이익과 부당함에는 화를 낸다. 지금 성주 사람들은 그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그래도 높다는 점이 고까울 이들이 있겠지만, 물려받은 정치 지형을 대폭 갈아엎는 건 다른 지역에서도 힘든 일이다. 경북을 이상한 주술에 지배당하는 지역쯤으로 몰아붙이는 건 동양을 멸시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다를 바 없는 폭력이다.


경로당에 걸린 박근혜 대형사진을 철거한 성주 노인들을 “그런 사진을 걸었다”는 이유로 비웃는 분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살면서 우상이나 성역을 철거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상징하는 ‘한 컷’마저도 자신의 우월감 혹은 차별의식을 위한 소재로 쓰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왔고 지역에 부당한 일이 일어나자 더욱 빛을 발하는 성주 농민들과 구미 시민단체들처럼 살라고 주문하지는 않겠다. 출신 지역이나 투표 전력을 트집잡아 인간을, 그것도 정의로운 투쟁에 나서는 사람을 경멸할 명분은 없다. 연탄재도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4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