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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호기 - 돈과 부자를 존경하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

irene777 2016. 8. 2. 19:09



[경향의 눈]


돈과 부자를 존경하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


- 경향신문  2016년 7월 27일 -





▲ 안호기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승만과 박정희는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배웠다. 존경할 만한 위인 중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유관순 누나, 안중근 의사도 있었다.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서정주의 시는 아름다웠고, 이광수의 소설은 재미있었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은 언론인의 기개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아는 게 많아지면서 존경의 대상은 점차 줄어들고, 배신감만 늘어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던 경제계 인물이었다. 대학생들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가장 선호하는 경제인으로 이 회장을 꼽았다. 한국갤럽이 2004년과 2014년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기업인’ 1위는 모두 이 회장 차지였다. 2014년에는 10대와 20대 40% 이상이 이 회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에서도 7위였다. 10·20대로 한정하면 4위로 뛰어오른다. 존경하는 인물 10명 중 생존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위)과 이 회장뿐이었다. 그러나 성매수 의혹이 불거진 지금 이건희를 존경한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 회장의 어떤 면을 보고 존경심을 갖게 됐을까.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공을 높이 살 만하다. 한국 최고 부자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만여명의 임직원을 먹여살리는 그룹 최고경영자로 여기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탁월했다. 반면 이 회장이 어떤 경영철학을 갖고 있으며, 사회에 얼마나 희생하고 기여했는지 살핀 뒤 존경심을 품게 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건희는 비자금 조성과 로비, 분식회계, 편법상속 등 각종 불공정행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 됐든 그는 기업인으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은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보유했다. 온갖 비리 의혹에도 그가 한 차례도 감옥에 가지 않은 것은 절대권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학생과 청년이 이 회장을 존경했던 것은 그를 닮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존경의 대상은 자연인 이건희가 아닌 기업인 이 회장이었다. 그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한 것이다. 부러움의 대상을 존경의 대상으로 착각했다. 돈이 권력이고, 존경받는 천박한 사회의 단면이다.


한때 잘나가는 검사였던 이들은 어떤가. 검사장 출신 변호사 홍만표는 2년 반 동안 250억원을 벌었다. 현직 검사장 진경준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120억원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 고위 공직자 검증 총책임자인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는 처가 건물 부당 매매, 몰래 변론, 아들 특혜 등 수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다. 공통적으로 돈을 지키거나 좇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들에게는 검사로서 가질 수 있었던 정의감이나 권력보다 큰 가치가 돈이었다. 3년 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사건 기소중지를 지휘했던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국회의원이 됐다.


젊은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한국의 검사는 권력에 의지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변호사 개업으로 큰돈 벌 궁리만 하는 걸까. 수년간 방치됐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를 재개한 이영렬 지검장과 이철희 부장검사가 묻혔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시민이 박수를 보낸다. 약자에게 힘이 되는 진짜 검사의 활약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돈을 존경하는 사회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타인을 배려하고 희생하기보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반사회적 행태가 만연하게 된다. 우병우 등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참된 존경의 대상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회에 헌신하고 정의를 실천해 시민이 인정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존경하는 인물을 한 사람 가슴에 품고 자라난 아이들은 가슴속에 하나의 등대를 갖고 있는 항해사와 같다”고 했다. 존경하는 인물이 생기면 그를 닮으려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태도도 진지해질 것이다.


반기문 총장은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존경의 이유는 유엔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작 유엔에서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의 삶보다 성공을 존경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게 훨씬 더 많다. 일부 외신은 반 총장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만약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 출마한다면 유엔에서의 공과를 비롯해 가혹한 검증을 거칠 것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난도질을 당할 수도 있다. 그의 출마가 어느 아이 가슴속의 등대를 무너뜨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경향신문  안호기 논설위원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7205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