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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 대통령이 18년만에 ‘고난을 벗 삼아’ 다시 꺼낸 이유

irene777 2016. 8. 3. 01:16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87>


박 대통령이 18년만에

‘고난을 벗 삼아’ 다시 꺼낸 이유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29일 -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창조경제밸리에서 스타트업 및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드-우병우 정국서 언급된 “고난 벗 삼아라” 

20·30대 고통스러웠던 시절 기록의 결과



책을 다시 찾아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7월21일 국가안보회의)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는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출판한 일기모음집 제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그리고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 이 책은 정치부 기자들의 필독서였습니다.


사드 배치 파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사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고난을 벗 삼아’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책을 다시 읽어보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국회도서관에 있는 책 한 권은 누군가 대출중이었습니다. 새누리당 실무 당직자에게 책을 좀 구해서 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찾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며칠을 기다려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일기를 써 왔습니다. 1998년 정계 입문을 계기로 그 중에서 공개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을 골라서 묶은 것이 이 책입니다. 책에 실린 첫번째 일기는 1974년 9월14일치, 마지막 일기는 1993년 7월26일치였습니다. 스물두살에서 마흔한살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은 뒤 무척 힘들던 시기의 기록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무척 많았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이데거가 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글을 읽으며 일기를 쓸 당시 그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18년전 박근혜 일기모음집 <고난을 벗삼아…> 제목처럼 

지금의 고통도 견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처럼 보이기도 

현재 박 대통령은 어떤 내용의 일기를 쓰고 있을까?



서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만약 내가 겪어야 될 일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끔찍한 생각에 더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날들….”


“그러나 그것만이 지난 날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오히려 삶의 참된 가치와 기쁨과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뚜렷이 알게 되었고 그 가치관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깊은 뿌리를 내 마음 속에 내리게 한 큰 공부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오히려 삶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고난을 벗 삼아’라는 표현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욥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욥은 가혹한 시련을 견디며 믿음을 지킨 인물입니다. 재난으로 재산과 자녀를 모두 잃고 피부병까지 얻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지난 6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고난을 벗 삼아’라는 말을 18년 만에 다시 꺼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드 배치와 우병우 민정수석 파장으로 인한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시련을 끝까지 견뎌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서문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이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남은 세월이 추가됨으로써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인생에 대한 근본적 가치관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앞으로 또 어떤 생각과 깨달음을 얻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는 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이 대목을 다시 읽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치 입문 이후 14년 만에 대통령이 됐고 대통령직을 지금 잘 수행하고 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지금은 일시적으로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지만 ‘끝까지 성실히 노력하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일기에서 인상적인 몇 대목을 골라 소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974년 9월14일>


아침 진지를 드신 후 아버지는 잠시 울음을 터뜨리셨다.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려고 너를 두셨는가 봐” 그러시며 어머니를 회상하셨다.


“너의 어머니 훌륭한 것이,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도 재산 모으는 것이라든가, 그러한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조그만 산이 하나 사고 싶고 사도 정당하게 사는 것이련만 남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오해를 산다고 서로 얘기를 하다가 그만두자고 하고 말았지.”


“어째서 육여사님의 서거에 내가 이렇게 슬퍼해야 하나 할 정도입니다.….”


오늘 받은 조문 서신의 한 구절이다.



<1974년 9월16일>


책임.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



<1974년 9월18일> 


어머니 돌아가심을, 그 유업을 헛되이 않는 것이 바로 나의 과업이다.



<1974년 11월10일>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 그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꿈, 이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로 했다. 이왕 공인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1979년 1월9일> 


아버지께서 새마음봉사단의 운영위원단을 접견하셨다. “새마음 갖기 운동이 각계 각층에 상당히 뿌리내렸지요?…노인을 위하는 나라가 양반나라입니다”하며 말문을 여셨다.


주역에 나오는 지천봉이라는 말을 인용하시면서 하늘이 땅에 봉사하고 극진히 위해 줄 때, 기업인이 종사원을, 나라가 국민을 그렇게 위할 때 바로 그러한 세상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1980년 1월14일> 


인생 행로 가는 길을 하나의 운전에 비유하자면 기어를 제때제때 잘 바꾸어야 진행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정말 잘 산다는 것은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는 인생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와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서서 환경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그 환경을 이용,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 발전하는 삶일 것이다.



<1981년 6월10일> 


몸에 더러운 때를 씻어내듯이, 마음의 때도 씻어내야 하는데 그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1년 10월28일>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시대상황과 혼란 속에 나라를 빼앗기고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 나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1982년 1월10일>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될 때, 자신은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옳다고 생각될 때, 그 사람은 가장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1989년 11월5일>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 그것도 비범하신 아버지를 모셨고, 생전이나 서거하신 후나 평범하지 않은 관심과 혹독한 비난에 시달리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 또한 평탄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



<1990년 1월10일> 


그 악한들의 그치지 않는 도전과 방해 속에서도 끝끝내 올바름을 잃지 않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그 주인공의 태도가 왜 그때 그토록 마음에 감동을 주었을까. 내가 겪었고, 겪고 있는 인생 행로 또는 고통과 흡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992년 1월14일> 


나의 소명은? 나의 천직은? 그 진리를 매일 마음에 새기고 밝히면서 바른 생각, 바른 언행을 성실히 실행하는 것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세상 임무에 불충실할 수도 없고 게으를 수도 없다.



<1993년 5월14일> 


자기 자신에게 지극히 정직하고 성실한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늘에 바칠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고귀한 기도가 될 것이다. 떳떳하고 바른 생활로 인도해 주는 그 등대는 바로 자기 마음 안에 있다.


하늘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바로 자기 마음 안에 계신 것이다.



<1993년 7월26일>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 일상의 해야 할 일들은 모두 자기 완성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일기를 읽다 보면 ‘올바름’ ‘정직’ ‘운명’ ‘소명’ 같은 단어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종교인의 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내용의 일기를 쓰고 있을까요? 세월이 흐른 뒤 박근혜 대통령의 2016년 일기를 읽어볼 수 있을까요?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542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