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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안숙 - 심리학으로 본 ‘불순세력’은 보통사람이었다

irene777 2016. 8. 2. 18:33



<왜냐면>


심리학으로 본 ‘불순세력’은 보통사람이었다


정안숙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심리학과 조교수


- 한겨레신문  2016년 7월 25일 -






성주가 난리다. 참외농사 짓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서울까지 와서 농성을 한다. 성주군민들은 외부인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이 되어버렸다. 이쯤 되면 너무나 익숙한 포장이다. 백남기 농민과 가톨릭농민회 사람들이 그랬고, 밀양 할머니들이 그랬다. “역대급 빽”이 있지 않은 한, 시민으로서 목소리 내려고 하다가는 개돼지의 울음 취급 받고 감옥에서건 중환자실에서건 입을 닫아야 한다.


재난 참사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그래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국가기관이 직접 듣고 기록으로 남긴 첫 사례가 발표되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2015년 말에 발주해서 2016년 1월부터 6월까지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공동체 심리학자로서, 나도 이번 연구에 참여했다. 특조위의 활동이 강제종료된 이후인 7월20일 종합결과를 발표했다.


단원고 희생자, 생존자, 일반인 희생자, 그리고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질적 조사를 실시했다. 심리학자들로 구성된 팀은 단원고 희생자의 부모들, 부모 역할을 하는 조부모 및 이모와 고모들, 그리고 형제자매들 145명을 심층면접했다. 그중 46개 면접을 질적 연구의 근거이론 방식으로 분석했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 동안 진행된 46개 면담을 풀어 쓰니 2300쪽에 달했다. 거기서 536개 주제가 도출되었다. 고통의 언어와 희망의 언어가 교차하고 있었다.


평소 세월호 참사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도 이번 연구의 질적 분석 결론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실은 이들이 이렇게 보통 사람인 줄 몰랐다. 노란 옷만 입고 도보행진하고 삭발하고 찜통더위 땡볕에도 108배를 하는 이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라에 원수진 이들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자료가 말해주는 대로 따라갔더니, 이들은 너무나 보통 사람이었다. 이들의 경험을 나타내는 핵심변인은 “부모/가족으로서의 역할”이었다.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로서, 당연히 학교를 신뢰했고 학교 주최의 수학여행을 보내느라 최선을 다했다. 참사가 났을 당시에도 나라를 신뢰하는 보통 부모답게, 기다리고 애써왔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질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이 질문이 2년 넘도록 답을 못 얻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부모로서, 가족으로서 여전히 이 소박한 질문에 답을 구하느라 거리에서 산다. 쓰러졌다 못 일어날 만큼 아프고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어도, “부모/가족의 역할”은 쓰러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집을 나선다. 아직 주검이 수습되지 않은 아홉 분의 가족들은 2014년 4월 그대로 팽목항에 산다. 이 소박한 질문 하나에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나라에 원수진 사람이다. 외부인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이다. 세금 먹고 국가경제를 파탄내는 주범이다. 정작 이 보통 사람들은 유리지갑으로 세금 내고, 그 세금으로 월급 받으시는 분들은 역대급 빽이 되시는 마당에.


피해자를 탓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회를 탓하면 나 또한 위험에 노출된 것을 인정하니 그만큼 불안해지는 것이다. 2014년 4월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불안에 반응했다. 2016년 7월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시 피해자들을 탓한다. 아직도 싸우냐며, 너무 특이한 사람들 아니냐며. 실은 너무나 우리 같은 이들이다. 역대급 빽들의 말을 대충 믿으며 뼈빠지게 살면 지금보다 삶이 나아질 거라고 여기며 살아온 보통 우리들이다. 내 아이가 학교 갔다가 떼로 죽어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내 아이가 아직도 저 깊은 바다에 갇혀 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너무나 소박한 부모 역할과 가족 역할에 삶의 의미가 걸린 이들이다.


지금 성주에서는 하루하루가 투쟁이 되었다. 지금 백남기 농민은 8개월째 의식이 없다. 지금 팽목에서는 바다 밑 상황에 하루하루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이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목소리가 불순세력의 투쟁이라고 믿으시는가? 역대급 빽들의 포장을 믿는 순간 우리 보통 사람들은 개돼지가 된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538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