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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희영 - 保守의 새로운 길

irene777 2016. 8. 4. 18:39



[송희영 칼럼]


保守의 새로운 길


- 조선일보  2016년 7월 30일 -





▲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아베노믹스 한계 부딪혔지만 선거마다 승리 거듭하며 성공 

트럼프 기존 공화당원 지지 잃고도 더 많은 유권자 끌어들여 

흠결 있어도 유능하다던 보수 정치, 이제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인상



아베 일본 총리가 8월 2일 경기 부양책을 발표한다. 28조엔(약 300조원) 규모다. 역대 셋째로 큰 부양책이건만 아사히신문은 예고 기사를 3면 구석에 실었다. 일본경제신문은 1면에 실었지만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서 밀려났다.


아베노믹스 인기가 죽었다고 할 만하다.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이었다는 전문가도 있지만 4년 만에 한계점에 부딪혔다는 진단이 맞을 것이다. 목표를 100% 달성하진 못했으나 곳곳에 윤기가 흐르고 생기가 돌았다. 부실을 털어내고 재탄생한 기업도 많다. 그 덕분에 아베 정권은 선거마다 승리를 거듭했다.


나라마다 집권 세력이 벼랑에서 추락하거나 아니면 겨우 절벽 끝에 매달려 구조대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시대가 아닌가. 아베는 그래도 성공한 총리다. 몇 달 간격으로 취임한 이웃 나라 대통령이 지금 처해 있는 처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 앞에서 함부로 행복한 표정을 짓기도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보수 정치는 뇌물 뒤범벅이었다. 다나카 가쿠에이를 비롯해 정계 실력자나 총리·장관들이 뇌물 스캔들로 줄줄이 낙마했다. 그래도 보수 정권이 명줄을 유지했던 비결은 경제를 살렸기 때문이다. 아베 같은 정치인이 등장해 숨통을 틔워주면서 더러운 뇌물 정치에 맑은 생수를 부어주곤 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검사 사회에 이런 말이 나돌았다. '부패보다 무능이 더 큰 죄(罪)다.' 적당히 뇌물을 받더라도 공안 사범, 폭력배를 잡아넣어야 한다, 그렇게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고도성장 시대 능력 있는 관료나 정치인의 경우 사소한 뇌물쯤은 용서받곤 했다.


그런 분위기가 수십 년 이어지면서 흠결이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국가가 인재로 등용해야 한다고들 했다. 그것이 어느 날부턴가 보수 정권은 흠결이 있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인 것처럼 포장됐다. 흠 없고 능력을 갖춘 사람, 흠도 많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분류였다. 보수란 흠결과 능력을 겸비한 것으로 과대 포장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보수는 진보 인사들의 무능(無能)을 깔봤다. 국정 운영 능력이 없다고 했다. 그들의 비리가 노출될 때마다 진보의 청렴 이미지 뒤에 숨겨진 위선(僞善)에 진저리 내는 언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다 정권이 교체됐다. 이제 보수 정권 9년을 보내며 우리가 보고 듣는 현실은 어떤가. 경제는 성장률 2%대에서 발목 잡혀 살아날 기미가 없다. 보수가 점수를 가장 많이 딸 수 있고, 많이 따야 할 과목이 낙제점이다. 성완종·우병우 스캔들로 인해 권력 핵심부는 지저분한 악취가 진동한다. 그러지 않아도 치명적인 흠 때문에 청문회 문턱에서 낙마한 총리·장관 후보가 역대 정권 중 최고로 많았다. 잡티투성이 깃발이나마 흔들며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투사는 보이지 않는다.


귀퉁이가 썩었어도 능력만큼은 뛰어나다던 보수가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유능하다는 자화자찬성 팻말은 물거품처럼 증발했다. 그 자리엔 뇌물을 받는 기법만 기발하게 발달한 1등, 수석 인생들이 득실거리는 잔상(殘像)만 짙고 깊게 남았다. 경제 과목에서 아베만큼이라도 성적을 냈다면 민심이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는 큰 도박을 걸었다. 공화당은 원래 자유무역을 추진해왔지만 트럼프는 모든 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고 나왔다. 성적(性的) 소수자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나토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동 개입하지 않고 동맹국이 얼마큼 비용을 분담하느냐에 따라 반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외교·안보적 보수, 경제적 보수, 사회적 보수를 모두 수정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적지않은 공화당원의 지지를 잃었다. 하지만 더 많은 유권자를 새로운 공화당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가 처음 출마 선언할 때 고작 1%대였던 지지율이 40% 중반까지 올랐다. 아베가 무차별적 양적 완화로 일본 경제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면 트럼프는 미국의 보수 정치에 새 피를 수혈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치를 이어왔다는 정당이다. 하지만 총선 후 전당대회 모습을 보면 한숨조차 주기가 아깝다. 국민은 보수 집단 전체를 심판하려는데 보수 정권 내부에선 새 인물도 없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키재기하고 있다.


트럼프나 아베 같은 도박은커녕 부패 이미지를 씻기 위해 안경테라도 바꿔보려는 변신의 몸부림은 없다. 새로운 보수의 길을 찾겠다는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대선이 닥쳐와 10원짜리 동전을 뒤집으면 뒷면이 1조원 금화(金貨)로 자동 변환되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무능한 것도 모자라 썩어빠진 보수'라는 새 명찰을 10년, 20년 달고 싶은 모양이다.



-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29/2016072902626.html>